지난달 28일 아침 9시. 국민일보 인턴기자 ‘꿍미니’가 일일 경비원 체험을 하는 날이야. 가슴이 살짝 두근대더라. 13년간 이 아파트 단지에 살며 매일같이 지나친 경비실인데 막상 들어가 본 기억은 없더라고.

파란 경비복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똑똑, 문을 두드린 뒤 조용히 경비초소 안으로 들어갔어. 오늘 하루 함께 근무할 경비원 김모(65)씨가 앉아 있었어. 김씨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재촉부터 했어.

“박씨 형님이 일 나갔으니까 가서 도와줘. 나보다 7년 선배라 혼자 하면 힘들어.”

경비원들 사이에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일은 ‘머슴 되는 날’이라고 불린대. 이 단지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1~9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 우리 집 분리수거 담당도 나여서 시스템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는 금방 깨달았지만.


지난달 28일 오전 9시 일일 경비원 체험을 위해 경비초소로 출근한 나는 파란색 경비원복과 모자를 빌려쓰고 해야할 일들을 받아적었다. 이하 한명오 인턴기자

“신문지 속 양념치킨” 분리수거장의 악몽

뭐 별거 있겠어. 처음에는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어. 나는 1일 1헬스가 신념인 헬스 마니아야. 힘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지. 하지만 경비원 체험을 계획할 때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어. 바로 냄새야.

동료 경비원들의 재촉을 받으며 분리수거장 반경 10m 내로 접근하자 후각 시스템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어. 쉰 우유에 쉰 김칫국물을 섞어 며칠 묵히면 이런 냄새가 날까. 예상치 못한 악취가 훅, 코를 찔렀어. 마스크를 썼는데도 들숨과 날숨이 오갈 때마다 악취가 끊임없이 끼어들었어.

마대자루에 든 스티로폼을 바닥에 쏟자 분리수거 되지 않는 '땅콩 스티로폼'이 잔뜩 섞여 있다.

수거장에서는 선임 경비원인 박모(72)씨가 마대자루 속 쓰레기를 바닥에 붓고 있었어. 손가락 크기의 땅콩 스티로폼이 우수수 쏟아졌지. “아이고 일 났네.” 박씨가 중얼거렸어. 땅콩 스티로폼은 재활용이 안 되는 일반 쓰레기야. 게다가 물이 조금이라도 묻으면 서로 뒤엉켜 엉망이 돼. 공지를 몇번이나 했지만 소용이 없대. 매주 자루에는 어김없이 땅콩 스티로폼이 들어있어.

분리수거장에는 마대자루 7개가 줄지어 놓여있었어. 배꼽쯤 올라오는 거대한 자루가 2개, 무릎까지 오는 작은 게 5개. 각각의 마대자루에는 비닐, 유리병, 금속류, 우유팩, 신문, 종이, 박스까지 분류를 적은 흰 종이가 붙어 있어. 비닐 마대자루에는 비닐만, 신문 마대자루에는 신문만 넣으라는 뜻인 거지. 이 간단한 지시사항을 이해하는 주민이 단지에는 한 사람도 없는 듯했어.

“신문만! 신문만! 제발 신문만!”

플라스틱 수거용 분리수거 마대자루에 담겨있던 온갖 쓰레기들. 주민들은 배달음식을 먹고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지 않은 채 자루에 그대로 던져넣었다. 하나씩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충격적인 장면이 됐다. 설마 이정도로 엉망일 줄이야.

각각의 마대자루 안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말문이 막히더라. 말 그대로 뒤죽박죽 쓰레기통이었어. 비닐만 모으는 자루 안에는 냉동 택배에 쓰는 아이스팩부터 플라스틱까지 뒤섞여 있었어. 꽁꽁 묶은 검정 비닐봉지도 보였고. 잘린 손가락이라도 들어있으려나. 눈을 질끈 감고 열어보니 깨진 유리병이었어. 그나마 다행이지 뭐야. 분리수거장의 최대 공포가 검정 비닐봉지라더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거 같았어.

플라스틱 수거 자루에는 유독 음식 찌꺼기들이 가득했어. 퉁퉁 불은 스파게티와 말라비틀어진 감자튀김, 치킨, 떡볶이, 순대에 정체불명의 양념 범벅까지. 하나씩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아예 뷔페 상차림이야. 배달 용기가 플라스틱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던져놓은 모양이지? 이런 걸 나름 질서 있는 무단투기라고 불러야 할까.

‘신문만’이라고 표시된 마대자루에는 찢긴 영수증 조각과 코팅 포장된 화장품 포장박스가 뒤엉켜 있었어. 압권은 신문지 사이에 얌전히 앉아있던 양념치킨 뼛조각이 담긴 상자였어. 분리수거를 하다 고춧가루 범벅의 치킨 유해를 발굴하게 될 줄이야. 물론 이 친구가 ‘신문만’에서 발견된 건 종이 재질의 상자 때문일 테고.

“이거 하나하나 전부 골라내야 해.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돼. 수거업체에서 안 가져간다고 버티면 골치 아파.” 망연자실한 내 표정을 봤는지, 못 봤는지 박씨가 심드렁한 말투로 재촉했어.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주민들이 '신문지만' 마대자루에 버려둔 쓰레기를 일일이 골라냈다. 쓰레기 수거업체에서 신문지 외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수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 지시에 따라 허리를 90도로 굽혀 잡초를 뽑듯 손아귀에 힘을 꽉 쥐고 신문이 아닌 것들을 골라냈어. 10분 동안 새우등처럼 몸을 굽힌 채 골라내고 있자니 갈비뼈 한쪽이 저려오더라. 그 순간, 자루에 머리를 처박은 내 옆으로 주민 그림자가 다가왔어. 툭. 마대자루에 뭔가가 떨어졌어. 담뱃갑이야.

‘신문만! 신문만! 안보여요?’ 고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어. 치미는 울화에 얼굴이 벌게졌어.

‘신문만’ 마대자루를 마치고 다음은 ‘박스’ 마대자루야. 이 구역의 골칫거리는 박스에 붙은 테이프였어. 택배 박스에 붙은 테이프와 송장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건 온 국민이 아는 상식이야. 그렇지 않나. 하지만 이 기본적인 일을 하는 주민을 나는 30분 지켜보는 동안 딱 한명 봤어. 그가 얼마나 교양 있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활짝 웃어주고 말았어.

박스더미들 사이로 누군가가 거주지를 감추려 운송장을 떼고 버린 상자 속에 비닐, 생활 쓰레기가 가득 담겨 있다. 한명오 인턴기자

허둥대는 내게 박씨가 노하우를 전수해줬어. 박스 옆면 밑바닥을 꾹 눌러주면 공간이 생겨 뜯기 쉽다고 말이야. 박스 옆면을 힘껏, 주민들을 향한 분노까지 담아 퍽, 주먹으로 내리쳤어. 박스가 부욱, 소리를 내며 찢기자 속이 시원해졌어.

박씨가 30분간 정리를 마치면 다음에는 김씨 차례야(두 사람은 30분 간격으로 분리수거장을 오가며 정리를 도왔어). 그를 따라 수거장으로 가보니 마대자루 안은 다시 뒤죽박죽이 돼 있더라. 그새? 경비원이 수거장을 비운 건 고작 몇 분이야. 경비초소로 돌아가 찬물 한잔을 마셨을 뿐인데 마대자루안은 쓰레기들로 다시 한가득이었어.

게다가 바닥에는 아까는 없던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얌전히 놓여있었어. 안에는 분리수거를 해야 할 물건들이 담겨 있었고. 이건 니들이 알아서 정리하라는 뜻일까. 모욕감과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왔어.

한 주민이 버려둔 스티로폼 박스 안에 갖가지 쓰레기가 담겨 있다(윗줄 사진 2장) . 왼쪽 아래 사진은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채 화단에 방치된 대형 폐기물. 오른쪽은 잡동사기가 가득한 비닐 마대자루.

“주차 경고장? 무슨 난리 겪으려고?”

“이거 해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취업준비나 해야지. 아니면 우리 월급이나 올려주든가.”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김씨가 대뜸 핀잔을 줬어.

그리고는 서랍을 열어 노란색 ‘주차 경고장’ 스티커를 한 움큼 쥐어 내 앞에 흔들었어. “이거? 이거 붙였다간 난리나. 이거 한 번 붙였다가 큰일 날 뻔했어.” 관리사무소에서 주차 관리를 할 때 쓰라고 나눠준 스티커지만 무용지물이라고 했어. 최근 입주민과의 주차 마찰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우이동의 경비원 사건이 떠올랐어.

(왼쪽)경비원 김씨와 취재기자가 근무 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오른쪽) 관리사무소에서 준 경고장. 김씨는 이 경고장을 차량에 붙였다가 큰 사단이 난 적이 있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명오 인턴기자

박씨도 동조했어. 몇 년 전 주차 경고장 스티커를 한번 붙였다가 젊은 주민과 한바탕 대거리를 했다고 해. 이후에 관리사무소에 민원이 들어와 혼이 났대. 이제는 A4용지에 펜으로 ‘여기다 주차하면 다른 주민에게 피해를 줍니다’라고 써서 와이퍼 밑에 꽂아놓는다고 그래. 그것 이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나.

그나마 이 단지에는 얼마 전까지 주차관리와 경비 업무를 겸직하는 별도의 직원이 한 명 있었어. 워낙 성실한 직원이라 주차문제로 속 썩일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해. 하지만 7년 넘게 하루 24시간, 쪽잠 자며 고지식하게 일하던 그는 결국 골병이 들어 일을 그만뒀어. 현재는 주차 관리자가 공석이라 뒤엉키는 주차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해.

경비 용역 업체가 경비원에게 배부한 경비업무 지침서. 어느곳에도 분리수거, 택배수령과 같은 경비 외 업무가 써져 있지 않다.

“이번에 죽은 우이동 경비.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어. 우리는 주민들 밥이야. 주민들이 죽으라면 우린 죽은 시늉까지 해야 돼.” 나와 얘기를 나누며 바닥을 쓸던 김씨가 중얼거렸어. 말끝이 울음으로 살짝 흐려지는 게 느껴졌어. 2년차 신참 경비원인 김씨는 9급 공무원으로 35년간 공직생활을 했대.

“다른 데는 200만원에 세금 떼고 월 193만원을 받아. 재활용 수고비 5만원을 더하면 198만원쯤이지. 근데 우리는 163만원 밖에 못 받아. 매달 용역회사에서 30% 떼어 가는 거야. 젊은 친구가 체험만 할 게 아니라 개선해줘야 돼.”

할 말이 없더라. 그냥 고개만 주억거렸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3시. 김씨와 박씨는 1시간씩 돌아가며 경비실 구석 한 켠에 자리 잡은 매트리스 위에서 쪽잠을 청했어. 김씨는 눕자마자 코를 골았어. 눈꺼풀이 무거워진 듯 박씨도 하품을 하며 숨을 크게 들이켰어. 그 와중에도 경비초소 인터폰은 쉴새 없이 울려댔고, 주차차단기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어.

지난달 28일 경비실 디지털 시계가 오후 3시5분으로 표시돼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김씨와 박씨가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늦은 점심을 먹고 쪽잠을 청하는 곳.

늦은 오후가 되자 하나둘씩 택배 차량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녹색 핸드카트에 잔뜩 실린 박스를 끌며 택배기사가 경비실로 오더니 박스를 경비실 한구석에 차곡차곡 올렸어. 택배기사는 내게 “어, 왜 이렇게 젊은 분이 계시지?”하며 신기한 듯 쳐다봤어.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오늘 처음 출근했습니다”라고 답했지.

우편물 관리대장을 펼치고 들어온 택배의 주인들을 적어 내려갔어. 가끔 택배가 쌓이면 초소 안에 자리가 없어 밖에 꺼내두고는 하는데 말도 안 하고 가져가 버리는 주민들 때문에 속깨나 썩는대. 관리대장에 누락되면 다음 근무자 인수인계 때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야. 잠깐 군대에서 선임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때가 떠올라 움찔했어.

택배 대장을 정리하다 문득 박스에 붙은 송장 위 글귀가 눈에 들어왔어.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이 평범한 글귀에 왠지 오싹 소름이 돋더라. ‘아, 다음 주면 이 박스들이 다시 분리수거장에 널브러지겠구나.’ 택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건 처음인 거 같아.

오후 6시 드디어 퇴근시간. 박씨와 김씨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어. “힘들었지?” 그 말 한마디에 울컥, 온갖 감정이 밀려오더라. 피곤함, 미안함, 고마움, 안타까움, 뭐 그런 것들이 뒤범벅이 된 감정이었어. 별 대꾸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오고 말았어. 집으로 가는 길에 바닥에 담배꽁초가 보이더라. 얼른 주웠어. 길바닥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운 것 역시 처음인 거 같아.

경비원으로 하루 살아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렇게는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이 참 달라 보이는 하루였어.

<경비업법 논란은…>

경비업법 제2조에 따르면 경비 외적 업무를 경비원에게 시키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경비업법 제15조의2 제2항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업법상 시설경비업에 해당한다. 이들은 법률상에서 경비대상시설에서의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을 방지하는 업무에만 종사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단속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어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은 본업인 경비 업무보다 분리수거, 택배관리, 불법 주차 단속, 제초작업, 조경관리 등 잡무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잡무를 소홀히 해 민원이 들어오면 일을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은 이번 ‘우이동 갑질 사건’을 계기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은 국토교통부와 함께 6월부터 12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두고 이후 아파트 경비원의 경비 업무 외 청소나 조경 등 다른 업무 시 경비업법 위반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비 외 업무를 경비원에게 맡기지 못할면 기존 경비 인력을 전자경비시스템으로 대체하고 단지 관리를 맡아줄 다른 인력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렇게 되면 경비원 상당수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며 “재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비원들의 대량 해고가 목전에 두고 있다. 근로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방향일지, 아파트 경비원의 대규모 실직일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명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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