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눈 마저 안 보이면… 7살 예빈이는 숙제가 많다[이슈&탐사]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③특수교육 프로그램 전무, 설리번이 없다

데프블라인드 진예빈(7)양이 지난달 13일 제주도 농아복지관에서 현선미 수어연구팀장과 수어로 대화를 하며 게임을 하고 있다. 예빈이의 양쪽 귀는 들리지 않고 왼쪽 눈은 보이지 않는다. 예빈이는 남은 오른쪽 눈으로 수어를 배우며 시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최민석 기자

일곱 살 예빈이는 오른쪽 눈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다. 태어났을 때부터 듣지 못했고 왼쪽 눈의 시력이 없었다. 양쪽 귀에 인공와우(달팽이관의 기능을 대신하는 장치)를 이식했지만 말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오른쪽 눈의 시력은 0.5. 그마저 점차 악화하는 중이다. 예빈이 어머니는 딸이 전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데프블라인드(Deaf-Blind)로 살 수 있다고 보고 지금부터 준비를 시키고 있다.


지난달 21일 찾은 제주도 농아복지관 3층 ‘배움의 방’에서 예빈이의 수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빈이는 현선미 복지관 수어연구팀장과 함께 칠판에 색종이를 잘라 붙이고 주사위를 던져 말을 이동시키는 게임을 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수어 표현을 배우고 소근육(손가락 등과 관련된 작은 근육)을 키우는 활동이었다. 모든 대화는 수어로 진행됐다.

“테이프 조금만 잘라 주세요.” “색종이에 순서대로 숫자를 적어볼까?” 현 팀장이 예빈이의 참여를 유도했다. 예빈이는 자연스럽게 가위질을 하고 크레파스로 숫자를 써 내려갔다. 게임을 하다 자신이 던진 주사위가 6이 나오자 수어로 자랑했다. 게임에서 이긴 선생님이 “내가 이겼네. 기분 나빠하지 마”라고 달래자 예빈이는 새끼손가락으로 턱을 짚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게임에서 먼저 골인한 현선미 팀장이 진예빈양을 달래자 예빈이가 수어로 “괜찮다”고 대답하고 있다. 제주=최민석 기자

예빈이는 다섯 살 때부터 복지관에 다니며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말을 못 하므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그저 아기처럼 울었다. 그래서 어머니 김윤경(35)씨는 딸과 처음 수어로 대화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비장애인 아이를 둔) 다른 엄마들은 진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식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수어를 배운 뒤 소통에 목말랐던 예빈이의 표현 욕구가 분출했다. 김씨는 “수어를 알고서는 낯선 것을 접할 때마다 ‘이건 뭐야?’ ‘왜?’라고 쉴 새 없이 물었다. 자기 이야기나 느꼈던 감정도 전부 수어로 말하더라”고 했다. 예빈이는 더 전문적으로 수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해 서울의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로 유학을 다녀왔다.

수어 학습은 어머니가 구상한 계획의 시작 단계일 뿐이다. 김씨는 예빈이가 수어를 완벽히 익히도록 한 뒤 한글과 점자를 배우게 할 예정이다. 손을 만져 수어를 이해하는 ‘촉수화’도 익히게 할 계획이다.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잃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김씨는 “완전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됐을 때를 대비해 촉수화든 점자든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을 갖추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진예빈양과 현선미 팀장이 수업 중에 주사위를 던지다 말고 수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 팀장은 “예빈이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다 좋아한다”고 했다. 제주=최민석 기자

하지만 데프블라인드 아동에게 한국의 교육 체계는 척박하다.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에 데프블라인드 아동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나 시설은 한 곳도 없다. 관련 교재는커녕 기초적인 교육 매뉴얼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농학교나 맹학교조차 대부분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부담스럽게 여겨 받기를 꺼린다. 김씨는 “찾아가 물어보면 ‘여긴 그런(시청각장애인) 학생이 없다. 다른 곳으로 가서 배워보면 어떠냐’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제주도 농아복지관이 시청각장애인 관련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김씨는 “일선 학교는 물론 특수교육지원센터나 의원실까지 찾아가 봤지만 대부분 별수가 없다더라”며 “해외 이민도 고려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포기했다”고 했다. 고민 끝에 예빈이를 제주도 내 종합형 특수학교에 진학시키기로 했다. 김씨와 복지관 측은 예빈이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할 계획이다.

예빈이는 눈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며 아픈 데가 많아 병원에 자주 간다는 것까지만 안다. 수어를 시작한 뒤에야 “눈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을 조금씩 한다고 했다. 김씨는 “시각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상처가 너무 클 것 같아 차마 말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눈이 점점 안 보이게 되면 조심스럽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아용 시력 검사표 앞에 서 있는 진예빈양. 유일하게 기능하는 예빈이의 오른쪽 눈은 지금보다 더 안 보이게 될 수도 있다. 진예빈양 가족 제공

예빈이의 장애는 유전성 질환인 ‘차지증후군’ 탓이다. 낯선 유전병은 시청각장애와 심장질환, 뇌병변장애, 구순구개열(입천장 갈림증)을 동반했다. 하나만 가져도 힘든 장애를 여럿 짊어지고 있는 딸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성숙했다.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표현을 하지 않는다. 김씨는 “엄마가 자기 때문에 고생한 것을 알아서인지 잘 까불지 않는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자라줘 고맙다”고 말했다.

문성은 제주도 농아복지관장은 “예빈이 어머님이 상당한 열의가 있으셔서 조기교육이 가능했다”면서 “국내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전담 교육기관이 없어 가르침에 한계가 있다. 교육에서 소외된 당사자를 위한 정부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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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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