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았던 어제, 오늘은 보이지도 않는다[이슈&탐사]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④후천적 장애까지 덮친 3인의 삶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교육실에서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김지현(오른쪽)씨가 촉수화 통역을 통해 국민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데프블라인드(Deaf-Blind)는 선천적인 경우보다 후천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유전적 특성이 뒤늦게 발현하거나 사고로 장애가 더해지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시각장애가 생기거나 시각장애인에게 청각장애가 생긴다. 하나의 장애를 갖고 살다가 또 다른 장애가 나타나면 공포감은 극에 이른다. 취재팀은 듣지 못하고 살다가 눈까지 멀게 된 세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장애가 더해진 이후 삶이 극명하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활발했던 재원씨, 집에 갇히다
지난달 22일 강원도 원주에서 만난 박재원(53)씨. 수어를 이해하기 위해 수어통역사의 손을 만지는 그의 왼쪽 손목에 상처가 나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의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며칠 전 제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점심을 먹기 위해 뜨거운 걸 잡다가 데었어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 박씨는 30여년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스물두 살에 선풍기를 만드는 회사(한일전기)에 취업해 스물아홉 살에 청각장애인인 아내와 결혼했다. 서른두 살에 딸을 낳았다. 활발한 성격이었다. 농아인협회 활동에 자주 참여했다. 과거 농학교에 다닐 때는 유도를 취미로 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박재원(오른쪽)씨는 시각장애를 함께 겪으며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아내가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 원주=권중혁 기자

서른네 살이던 2001년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지만 기계를 다루는 회사 일이 문제였다. 12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다행히 회사가 아내를 대신 채용했다.

시력을 되찾기 위해 5년여간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눈에 좋다는 음식도 소용이 없었다. 시력이 왜 나빠진 건지 그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2006년쯤 어딘가에 부딪혀 상태가 더 악화했다고 믿고 있다. 그때 의사는 시력을 점점 더 잃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책과 문자를 보지 못하고 평생 갇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가 수어로 말했다.

박씨는 이제 빛이 어느 쪽에 있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글자를 아무리 크게 해도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다. 오래된 피처폰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 됐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서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는 “문자를 주고받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대화도 줄고 있다. 오랫동안 수어로 의사소통을 해온 아내의 손동작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수어를 덜 쓰면서 수어 표현을 잊고 있다. 예전 같으면 문장으로 할 수어를 지금은 간단한 단어로만 표현한다. 딸의 모습도 2015년에서 멈춰 있다. “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제일 서운합니다.” 처음 보는 취재팀 앞에서 박씨는 10여분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포기한 ‘보통 사람의 삶’
지난달 8일 서울에서 만난 이희경(41)씨도 후천적 데프블라인드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갖고 있던 그는 일곱 살 때 안구 질환을 앓으며 왼쪽 시력을 잃었다. 스물여덟 살에는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잃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지금은 눈앞이 ‘백지’처럼 보인다. 햇빛이 강한 날 낮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쪽 시력이 좋지 않으므로 살면서 남은 시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크게 해서 실망은 하지 않았어요. 감정적으로는 괜찮았는데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니까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던 이모(41)씨는 성인이 된 이후 시력을 잃어 데프블라인드가 됐다. 지난달 8일 만난 이씨(왼쪽)의 말을 활동보조인이 통역해주고 있다. 방극렬 기자

각오는 했지만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이씨가 홀로 견뎌야 했다. 눈이 보였을 때는 외로운 느낌이 날 때면 지인들과 수어로 대화를 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시력을 잃고 난 뒤로는 혼자 외출을 할 수 없었고 이야기할 상대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청각장애인 모임에 나가도 그는 외톨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이 보이는데, 나는 누가 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모임 속에서도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몰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시력을 잃기 전 이씨의 꿈은 ‘보통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평범한 결혼 생활을 그렸지만 장애가 겹쳐지면서 포기했다. 당장 세탁기를 사용해 빨래하는 일부터 가로막히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해 줄 사람이 없어서 결혼은 포기한 상태에요. 시각이나 청각 중 한쪽만 장애가 있었더라면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어 어려울 것 같아요.”

이씨를 세상과 이어주는 창구는 청각장애인 활동지원사 김명순씨다. 이씨는 “예전 활동지원사들은 먹여주고 데려다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강아지 다루듯 나를 대했지만 명순씨는 나를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씨는 김씨에게서 수어도 배웠다. 이씨는 오랫동안 청각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연습하는 구화 교육 학교를 나와 수어는 ‘좋다’ ‘싫다’ 정도만 알았다. 두 사람은 수어를 손으로 만져가며 이해하는 ‘촉수화’로 소통한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교육실에서 김지현씨가 '들리지만 않았던 삶'에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삶'을 살게 되면서 느낀 감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인터뷰는 수어를 손으로 만져서 소통하는 '촉수화' 통역으로 이뤄졌다. 윤성호 기자

준비 못하고 맞은 장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청각장애가 생긴 김지현(51)씨는 서른 살 때부터 시력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건 서른세 살.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만난 김씨는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시력이 나빠질 무렵 별거를 하던 남편과 합의이혼을 위해 2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남편은 시력을 상실한 김씨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눈까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눈이 나빠지는 3년간 김씨는 늘 걱정을 했지만 뭘 준비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시력과 청력을 다 잃었을 때 남들과 소통하려면 뭘 배워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 “안내해주는 기관이나 사람이 없다 보니 살면서 ‘이렇게 하면 되나’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웠습니다. 잘 보일 때 봐 둘걸, 해 둘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요.”

김씨는 최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이던 그가 점자를 익히려면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점자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느끼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김씨는 지난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전투표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했다. 윤성호 기자

김씨는 데프블라인드를 ‘숨겨져 있는 장애’라고 표현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정작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장애라는 뜻이다. 그는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시청각장애인을 돕는 사업을 하는 밀알복지재단이 선거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김씨 한 사람만 신청했다. 수어통역사의 손을 만지는 촉수화를 통해 투표 절차와 투표장 동선을 이해했다.

“볼 수 있었던 때는 투표에 관심이 별 없었는데 볼 수 없게 되니까 투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힘들긴 했지만 한 표를 행사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어요.”

다시 볼 수 있던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까. 그는 자신처럼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해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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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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