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리를 잃은 시청각장애인들 상당수는 유전 질환때문에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전 질환으로 장애가 나타나면 형제나 자매가 같은 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높다. 윤성호 기자

60대 여성 A씨는 40여년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화장실에서 남몰래 울었다.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들이 평생 듣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4년 뒤 낳은 사내 아이는 큰애와 마찬가지로 듣지 못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두 아들은 어머니가 정성껏 키운 덕에 잘 자랐다. 농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했고 직장을 구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 큰아들(43)에게 사고가 생겼다. 직장 동료가 실수로 뿌린 소독약이 눈에 들어갔다. 검사한 결과 그전부터 망막색소변성증(RP)이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아들은 사고 직후 왼쪽 눈을 실명했고 쫓겨나듯 직장을 관뒀다. 5~6년 전엔 남은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했다. 자꾸 ‘뿌옇게 보인다’고 해 한 수술이었는데 결과는 또 실명이었다. 완전히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아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둘째 아들(39)도 성인이 돼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오른쪽 눈으로 살고 있다. 왼쪽 눈은 사물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다. 오른쪽 눈도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

두 아들이 모두 데프블라인드(Deaf-Blind)가 된 어머니는 하루가 지나가는 게 기적 같다. A씨는 지난달 13일 자택에서 취재팀과 만나 큰아들이 술을 마셔 걱정이라고 했다. “눈이 안 보이고 나서는 먹더라고요. 먹으면 잠이 온대요. 그래서 말리지는 못하고…. 가끔 무서울 때도 있었어요. 여기가 4층인데 15층(옥상)까지 올라갈까봐.”


취재팀은 형제나 자매가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데프블라인드를 여럿 만났다. 시각과 청각의 중복 장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유전과 조산인 탓이다. 미국 시청각 중복장애 아동 센서스는 2011년 이 장애의 원인을 크게 5가지로 분류했다. 유전과 미숙아(이른둥이), 선천성 합병증(풍진 등), 후천성 합병증(외상이나 눈·귀·뇌 손상 등), 원인불명의 희귀 질환이다.

유전적 원인으로는 어셔 증후군(Usher Syndrome)이 대표적이다. 선천적인 난청 이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한 시각장애가 더해지는 질환이다. A씨의 두 아들이 어셔 증후군에 속한다. 안구 결손, 심장 결함, 귀 기형 등을 일으키는 차지(CHARGE) 증후군도 시청각장애의 유전적 원인이다.

데프블라인드 방성호씨가 지난달 18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수어로 대답하고 있다. 청력은 모두 상실하고 시력만 약간 남아 있는 방씨는 근접 수어로 소통한다. 대전=방극렬 기자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 시력을 잃어가는 방성호(52)씨도 어셔 증후군에 해당한다. 그는 눈 높이 정면의 시야만 흐릿하게 보일 뿐 상하좌우는 볼 수 없다. 방씨는 지난달 18일 취재팀과 만나 “저와 비교하면 형님이 훨씬 심하다”고 말했다. 5남매 중 막내인 성호씨와 둘째인 형(59) 두 사람이 같은 장애를 겪고 있다. 형은 혼자서는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형은 장애 탓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아버지는 자식 교육에 큰 관심이 없었다. 장애가 있는 두 아들에게 더 강경했다. 아버지는 성호씨의 중학교 진학도 반대했지만 형이 이를 무릅쓰고 동생의 학비를 댔다. 성호씨는 형 덕택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큰 교회 농아부에서 17년간 일했는데 시력이 나빠지면서 2년 전부터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다. 성호씨는 “나이가 더 들면 형과 비슷해질 것 같다.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시력이 매우 낮고 난청이 있는 차승우(56)씨도 형제 2남4녀 중 4명이 시청각장애인이다. 그는 “형님이 시청각장애인으로 약시에 청각장애가 있고 셋째 누나는 사람과 대화가 전혀 안 되고 외출할 때 활동도우미의 도움을 받는다. 큰누나는 저와 비슷하게 보고 듣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명절에 형제들이 모이면 싸우는 사람들처럼 대화한다고 한다.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차승우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집에서 코로나19 관련 뉴스 특보 자막을 보기 위해 얼굴을 화면 가까이에 대고 있다. 방극렬 기자

한편 A씨는 두 아들의 시력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한국RP협회(실명퇴치운동본부) 활동을 하고 있다. 망막색소변성증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들의 모임이다. 협회는 줄기세포를 통한 치료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실험 단계라는 설명이다. 김지택 중앙대병원 안과 교수는 “줄기세포 자체가 기존 시스템과 맞물리기 힘들다는 게 현재까지 대부분 연구 결과들”이라고 말했다.

A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믿고 싶어요.”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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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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