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무대에 오른 배우 하성광. 국립극단 제공


2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명동예술극장. 정부의 문화시설 휴관 조치로 극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조명은 무대 위 배우들을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아기 조씨고아를 안은 시골 의원 정영(하성광)이 비애 가득한 비명을 외치자 객석엔 여느 공연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사가 고조될수록 배우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은 굵어졌고, 공연관계자 등이 있는 20명 남짓한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잦아졌다.

이런 풍경이 펼쳐진 곳은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하 ‘조씨고아’) 최종 리허설 현장이었다. 중국 원나라의 작가 기군상이 쓴 고전 희곡을 고선웅 연출가가 각색·연출해 2015년 초연한 조씨고아는 올해 창단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가장 보고 싶은 연극’에서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티켓 오픈 단 하루 만에 전석 매진을 일으켰던 ‘조씨고아’는 25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약 한 달간 관객을 맞을 예정이었으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이 무기한 임시휴관에 들어가면서 공연 일정을 중단했다.

그러나 연습마저 멈추진 않았다. 국립극단은 “오프라인 공연이 가능해지면 1회라도 공연을 올린다”는 방침으로 늘 무대를 준비해 놓기로 했다. 당초 계획된 다음 달 26일까지 정부 휴관 지침이 해제되면 예매부터 다시 시작해 2~3일 뒤 즉각 공연을 재개하고, 종연일까지 휴관 조치가 지속하면 차선책인 온라인 중계방식으로 공연을 선보이는 방식이다. 관객을 하루라도 만날 수 있다면 ‘연극을 올리겠다’는 ‘조씨고아’ 배우와 창작진의 의지가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무대 위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그래서인지 이날 리허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눈빛과 몸짓에서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조씨고아’ 초연 때부터 주역으로 극의 흥행을 이끈 배우 하성광은 리허설 후 무대 뒤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연극은 관객과 현장에서 만나야만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연 재개를 막연히 기다려야 해 더 힘든 시기인 것 같다. 그럼에도 단 하루라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극인에게 ‘연극이 계속된다는 것’은 ‘삶이 계속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문제들이 생겼다고 해서 삶을 포기할 순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남산예술센터 역시 2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오르는 연극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에 ‘조씨고아’와 유사한 ‘당일 연극’ 형식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공연 기간 방역 당국 오전 브리핑 결과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일 경우 오전 11시부터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티켓을 오픈하고 그날 저녁 바로 무대를 올리는 형식이었다. 배우와 창작진은 공연 상영을 가정하고 계속 연습을 진행하고, 확진자 감소세가 없으면 다음 달 5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대체하기로 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무대 위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마스크를 쓰고 가만히 앉아있는 극장의 특성상 기본적 방역수칙을 준수하면 객석에서의 바이러스 전파 위험은 적은 게 사실이다. 공공극장과 민간 소극장을 가릴 것 없이 선제적으로 방역조치를 취한 덕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 2월부터 극장이 코로나19 확산의 계기를 제공한 사례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기약 없이 이어지는 문화시설 휴관 조치로 인해 연극인들의 고심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공연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간과 재정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당일 공연’ 방식은 배우·창작진을 포함한 연극인들의 희생을 전제한 것이어서 지속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잠잠해져 ‘조씨고아’ 공연이 재개된다고 해도 ‘객석 거리두기’로 이전처럼 많은 관객을 만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묵묵히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성광은 “드문드문 비어있는 자리들이 아쉽기도 하겠지만, 감동의 크기만 본다면 10분이 보든 100분이 보든 같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들은 관객분들을 만날 때까지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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