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5): 동양인 기숙사 방문한 첫 백인 교수

우상과 맞선 한 성자의 눈물: 한국 교회는 왜 권력이 됐는가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그 연단의 시간에 한 백인 교수가 기숙사 내 방문을 두드렸다. 프랑코 마리노라는 교수였다. 그때까지 백인 교수가 동양인 학생의 기숙사를 방문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학생은 왜 외출을 하지 않지요? 내가 당신이 우리 학교로 유학 온 후 유심히 지켜봤는데 주말이 돼도 외출하지 않고 추운 기숙사에서만 지내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어요. 혹시 어디 아픈가요?”

그의 얘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렀다. 이 적막한 학교에서 내게 관심 가져주는 이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노무라 학생,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극동에서 이 멀리까지 당신을 보내 신학 공부를 하게 하신 이가 누구겠어요? 지금 학생의 생활은 너무 어려울 겁니다. 인내하시고 공부에 열중하세요.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뿌리는 이도 하나님이요, 만드신 이도 하나님입니다.”

말을 마친 마리노 교수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했다. 나를 위해 백인 교수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다니…. 그의 따뜻한 마음이 손과 손을 통해 내 심장에 와 닿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먼 땅에서 한 따뜻한 영혼에 말이다. 그때까지의 나의 신앙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다면, 그 사건을 계기로 뜨겁게 변화됐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아, 주님 저를 진실로 사랑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이처럼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저를 지켜보며 기도하고 계시는데, 저는 제 괴로움에 잡혀 당신을 잊고 지냈습니다. 용서하소서. 하나님.”

마리노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일본의 미국 선교사를 통해 내 학비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 선교사의 장성한 아들이 내 학비를 책임졌다. 유학생에게 난제 중 하나인 비자 연장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교회의 한 장로라고 밝힌 분께서 편지를 주셨다.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이가 염려를 하면 안 되겠기에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장로께선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며 매달 내게 용돈을 보내셨다. 고학생에게 너무나도 귀한 물질이었다. 모든 분이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동양인 학생으로 과 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그때 나는 명백하게 배웠다. ‘사람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그리하여 기도 제목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평생 실천할 수 있을까’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인생을 비관하여, 어떻게 하면 빨리 죽을까만을 생각해 왔다. 하나님께 쓰일 소중한 나임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를 위해 희생했음에도 애써 외면해 오지 않았나 싶었다.

“하나님, 이 미천한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아픔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저를 온전히 맡기니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소서. 나를 거듭나게 하소서.”

지금도 나는 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아픈 영혼은 늘 사랑을 간구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들에게 눈을 두지 않는다. 물질보다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울고 있다.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