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주에서 21년 전 발생한 ‘40대 변호사 피살사건’의 교사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조직폭력배가 나타났다. 경찰은 재수사에 돌입, 진실규명에 나설 방침이다.

제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1999년 11월 5일 제주에서 발생한 변호사 이모(당시 45세)씨 피살 사건에 대해 사실상 재수사에 돌입했다고 29일 밝혔다.

차량서 숨진 채 발견된 변호사…“특수 흉기 사용”
이 변호사는 사건 당일 오전 6시48분쯤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옆 모 아파트 입구 사거리에 세워진 자신의 쏘나타 차량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제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한 뒤, 몇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숨진 이 변호사의 배와 가슴 등에는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발견 당시 차 문은 잠겨있었고, 현금이 든 지갑 등 소지품은 그대로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부검 결과 흉기에 찔린 곳이 무려 여섯 군데였고, 이 중 하나가 흉골을 관통한 뒤 이 변호사의 심장을 겨냥했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차량 밖에서 공격을 당한 뒤 차 안으로 몸을 피했으나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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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의였던 강현욱 제주대 교수는 “(흉기가) 거의 수직으로 흉골을 뚫고 들어가 심장까지 이르렀다”면서 특수한 흉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측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기관에서는 우발적인 살인보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경찰은 애초 치정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변호사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 당일 행적 등을 조사했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결국 2014년 11월 4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 형사처벌도 불가능해졌다.

돌연 등장한 ‘교사범’…속내는?
미제로 남을 줄 알았던 이 사건은, 제보자가 등장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5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는 ‘유탁파’ 전 조직원 김모(54)씨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연락해 사건 당일의 전말을 털어놨다.

김씨는 자신이 제주도 폭력조직 유탁파의 행동대원이었다며, 두목이었던 백모씨로부터 범행을 지시받았다고 주장했다. 백씨가 “문제가 있어서 손을 좀 봐야 하는데 동생 하나 시켜서 혼만 좀 내줘라. 다리에 두방”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동갑내기 조직원이었던 ‘갈매기’ 손모씨(2014년 사망)에게 범행을 맡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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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손씨가 백씨의 지시대로 다리에 상처를 입혀 겁만 주려 했으나, 이 변호사가 격렬히 저항하면서 살해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범행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모양의 흉기를 그려서 제작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 변호사의 이동 동선은 물론, 골목의 가로등이 꺼진 정황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씨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1년 전에 갈매기로부터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경험한 것이 아니면 이렇게 세세하게 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프로파일러 출신인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뒤 나오는 제보”라며 “갈매기가 했다는 상황에서 갈매기를 빼고 제보자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고 분석했다.

처벌 불가하지만…“진실규명에 초점”
제주경찰청은 사건 자료 열람 등을 위해 제주동부경찰서 담당인 이 사건을 미제사건 전담팀으로 이관하는 내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진범에 대한 처벌은 불가하지만, 의혹 해소를 위한 진실규명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다만 김씨가 동남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서 수사에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씨와 연락이 닿아 경찰이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주간 시설격리가 불가피하다.

또,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강제수사도 할 수 없다. 피의자나 참고인 등의 승낙을 얻어서 진행하는 임의 동행 형태로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어, 김씨가 협조를 거부할 경우 진술조차 듣기 힘들다. 제주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 관계자는 “우선 제보자의 진술을 듣고 이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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