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6): ‘가난한 오지’ 한국

우상과 맞선 한 성자의 눈물: 한국 교회는 왜 권력이 됐는가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바이올라대학 캠퍼스에서 성경을 읽는 자매들. 노 선생이 1950년대 신학 공부를 곳이다. 바이올라대학 홈페이지 캡쳐.

1957년. 켄터키성서대학을 거쳐 바이올라대학으로 진학한 나는 그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바이올라대학은 복음교회계 사립종합대학으로 선교 활동을 위한 인재 양성이 설립 목적이었다. T.C 호턴과 라이먼 스튜어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바이블대학이라는 교명으로 시작했다. 스튜어트는 유니언오일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나는 목사 안수를 앞두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평생 하나님 뜻을 좆아 오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게 하소서라고 말이다.

그 무렵 멀리 남미 에콰도르의 한 선교단체로부터 현지 기독교방송국을 맡아 기관 사역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남미 지역 청취자 가운데 일본어가 익숙한 이들을 위한 사역이었다. 또 파푸아뉴기니를 사역지로 놓고 기도와 묵상을 하기도 했다. 원주민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리고 싶었다. 당연히 복음의 황무지인 일본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안수를 주던 목사는 굵은 목소리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대언했다. 그 말에 눈물이 흘렀다.
“주님 내가 어디를 가든, 가난한 심령을 위해 평생 따르겠나이다.”

켄터키성서대학과 바이올라대학에서 나는 내 영혼을 살찌우는 많은 멘토를 만났다. 두 대학에서 강의했던 마리노 교수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했으며, 지구촌 복음화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복음은 이 땅의 가난한 자, 포로된자,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 예수는 당연히 만민의 구주가 되시고,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사랑하신다. 부모가 여러 자식 중에도 병든 자식에게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쏟듯이 예수도 소외된 자들을 위해 손을 내미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랑을 주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충분한 자질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미국 서부 기독 사학 명문 페퍼다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소속 교단을 갖지 않았다. 교파적 목회는 나와 맞지도 않았고, 그 폐해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을 섬기려면 조직이나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하여 평생 ‘독립복음전도자’로 활동했다. 자유롭고 감사한 목회였다. 반면 늘 생활이 힘들었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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