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적발된 보존식이 누락된 상황. 전문가들은 보존식을 제대로 보관해야 식중독 사태 등에서 제대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유치원 한 곳에서만 100명 이상의 유증상자가 발생한 ‘안산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사태’ 전에도 경기도 내 여러 유치원에서는 급식 부실 운영 문제가 끊임없이 교육청 감사에 적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햄버거병 사태’가 급식 관리 부실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채 방치돼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가 경기도교육청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공시한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보고서’를 1일 분석한 결과 교육 당국으로부터 급식실과 주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경고 이상의 지적을 받은 것이 최소 10건 이상이었다. 하지만 해당 유치원은 경고 또는 관리자에 대한 감봉 1개월 등 비교적 가벼운 처분만 받았다.
또다른 유치원에서 보존식이 식판에 보관돼 있다 적발된 상황. 전용용기가 아닌 일반식판에 보관해 지적을 받았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가장 흔하게 발견된 급식실 부실 관리 사항은 식자재 검수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유통기한을 넘긴 식자재를 보관하다가 적발된 경우다. 수원에 있는 한 유치원은 2018년 현장점검에서 급식 관련 지적사항만 7가지가 넘었다. 이 유치원은 식재료 검수서뿐 아니라 급식일지도 부실하게 기재해 구매한 식재료가 실제로 사용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또 수입산 오징어는 국내산으로 둔갑시켰고, 건강검진결과서가 없는 사람을 조리보조원으로 고용했다. 보존식을 전용용기나 멸균봉투가 아닌 일반 식판에 보관하기도 했다.

시흥의 한 유치원도 11개월 동안 식자재 구매 및 검수서를 작성하지 않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보관했다가 감사에 적발됐다. 용인의 한 유치원은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업체에서 식자재를 구입해 급식자재로 쓴 사실이 확인됐는데, 현장점검에서 적발된 김치는 제조일자조차 표기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유치원은 유통기한이 1년 5개월이나 지난 식자재를 보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폐업 신고를 한 업체로부터 식자재 7000만원어치를 구매한 유치원도 있었다.

안산의 다른 유치원은 지난해 12월 오전 간식과 오후 간식에 대한 보존식을 누락해 감사에 적발됐다. 보존식 누락은 이번 ‘안산 햄버거병 사태’에서처럼 집단 발병 원인을 파악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문제다. 감사보고서는 “급식 관련 서류 작성 권한이 없는 조리보조가 영양사와 조리사 대신 급식관련 서류를 작성했고, 보존식이 누락됐는데도 영양사와 조리사가 총 4200여만원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도교육청은 관할 교육지원청에 경고 처분을 요구했다.
현장점검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들이 발견된 경우. 유통기한을 1년 5개월 넘긴 식자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영우 한양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보존식과 식자재 검수서 작성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이유는 대규모 식중독 감염 사태가 일어났을 때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햄버거병이 발병한 유치원 원장은 경찰 조사 등에서 “간식까지 보존식 처리를 해야 하는 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안산시 소재 A 유치원에서 지난 16일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식중독 증상 어린이가 지난 22일 기준 99명까지 늘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일부 어린이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까지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유치원들이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영양사를 공동 고용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수도권 사립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원생이 50명 이하인 유치원들은 영양사를 공동으로 채용할 수 있는데, 솔직히 영양사 한 명이 여러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급식실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성인보다 면역력이 훨씬 약한 아이들 급식 관리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이렇게 관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도교육청이 파악한 결과 급식관리를 총괄하는 영양사가 한 명도 없는 사립유치원은 317곳이나 됐다. 단독으로 영양사가 배치된 곳은 88곳에 불과했다. 유치원 5곳이 영양사 1명을 공동으로 고용한 곳은 500곳이 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20대 국회에서 유치원별 영양사 고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됐는데, 결국 회기가 끝날 때까지 반대하는 단체의 목소리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그동안 유치원은 감사 사안이 적발돼도 처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원과 정원 감축 등 강력한 제재조치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황윤태 송경모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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