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7개월 만에 공개 담화를 통해 “미국과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대북 협상 실무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대화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이목을 끈다.

최 제1부상은 4일 담화를 통해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는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과 관련해 “조미 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하는 데 대해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아직도 협상 같은 것을 갖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한 최 제1부상은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이룩된 정상회담 합의도 안중에 없는 대조선 적대 시 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린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 수 있겠냐”고 한 최 제1부상은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굳이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고 단언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한미 양국에서 나오는 데 대해 정상회담 무용론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최 제1부상은 “그 누구의 국내 정치 일정과 같은 외부적 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 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을 위한 ‘이벤트’ 차원의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장관 겸 대북 특별대표가 오는 7일~9일까지 방한할 예정인 상황에서 나온 담화라는 점에서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에 경고와 압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비건 부장관은 지난달 29일 화상회의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높지 않다고 밝히면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었다. 덕분에 비건 부장관의 방한 기간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할 가능성도 거론됐었다.

비건 부 장관은 7일 오후 군용기로 한국에 도착해 8일과 9일 외교부와 청와대를 잇달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인영 통일부 장관 내정자 등 새롭게 개편된 외교안보라인 인사들과 만나 대북 구상을 공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내비친 한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당사자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섣부르게 중재 의사를 표명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EU(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선 전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을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최 제1부상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10월의 서프라이즈’를 언급한 것을 저격하기도 했다. “그 무슨 10월의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명하며 우리의 비핵화 조치를 조건부적인 제재 완화와 바꿔 먹을 수 있다고 보는 공상가들이 있다”고 한 최 제1부상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우리의 기억에서 마저 삭막하게 잊혀가고 있었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 정부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원색적이거나 자극적이 비난을 하지 않아 대미 메시지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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