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본의 수도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고이케 유리코(68)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인구 1400만명의 거대 도시를 향후 4년간 더 이끌게 됐다.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고이케 후보는 전체 투표자 수 대비 59%에 달하는 366만1371표를 받아 당선이 확정됐다. 고이케 지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사실상 범여권 후보로 평가된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고이케 지사를 실질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도쿄도의 보수우경화 색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선거는 역대 가장 많은 후보인 22명이 출마했지만 고이케 지사의 적수는 없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5일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감염 확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거리 유세를 한 차례도 하지 않고 6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압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3월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내년 7월로 연기된 직후 ‘도시봉쇄’라는 말까지 동원해 긴급사태로 대응해야 한다고 중앙 정부를 압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중앙정부가 긴급사태를 선포한 후 외출 자제를 의미하는 ‘스테이 홈’을 주창하는 등 메시지 전달력이 강한 짧은 구호성 문구를 활용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고이케 지사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의 강력한 지원에 대해 매우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지금부터 중요한 2기째 중책을 담당해가는, 그 무게에 매우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어린이와 선수들은 내년으로 연기됐다고 하지만 대회(도쿄올림픽)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며 “어떤 의미에서 (올림픽이) 코로나를 이긴 증거로 삼는 것을 목표로 코로나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1952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간세이가쿠인 대학 사회학부를 다니던 중 아랍어 통역가를 꿈꾸며 무역상인 아버지가 일하던 이집트 유학길에 올랐다. 카이로대학을 졸업하고 아랍어 통역가로 활동하던 그는 1979년 니혼테레비(TV)보조 앵커를 맡으며 방송계에 진출했다.

1988년~1990년에는 테레비(TV)도쿄 메인 앵커로 활약했다. 1992년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이끌던 일본신당 소속으로 참의원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입성한 그는 이듬해 고향인 효고현 지역구에서 중의원 금배지를 다는 것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02년 자민당에 안착할 때까지 신진당과 보수당을 거치는 등 여러 차례 당적을 바꿨고 2014년까지 효고현과 도쿄를 지역구로 두고 8선을 달성했다. 중의원으로 있는 동안에는 환경상 등을 거친 뒤 아베 총리의 제1차 내각(2006~2007)에서 외교안보 관련 총리 직속 보좌관과 첫 여성 방위상을 지내 일본의 ‘콘돌리자 라이스’(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여성 국무장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자민당이 야당이던 2012년 총선 직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현 총리와 맞붙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지지하는 선택을 하면서 자민당 내의 비주류로 전락해 2차 아베 내각에선 별다른 자리를 맡지 못했다. 2016년 7월 부적절한 정치자금 논란 끝에 사퇴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지사의 후임을 뽑는 선거에 자민당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이 추천한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후보를 꺾고 도쿄도의 수장이 된 것이다.

고이케 지사는 여세를 몰아 ‘도민퍼스트회’라는 지역 정당을 만들어 2017년의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을 꺾고 전체 127석 중 49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 곧 총리 자리를 넘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고이케 지사에게 기회였다. 유권자들은 우왕좌왕하던 중앙정부의 아베 총리보다 능숙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이케 지사의 재선 성공은 과거사 부정 등 그의 우경화 행보를 한층 더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 소속인 그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도 참배해왔다. 그는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념적으로는 ‘아베보다도 더 우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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