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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53만원→213만원… ‘무늬만 정규직’ 아우성 속출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는 근로조건이 오히려 악화된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적에만 집중해 충분한 전환 설계 없이 추진하다 보니 노사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 자회사 직원 박상기(가명)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급여가 20~40만원 줄었다”고 털어놨다. 박씨의 2017년 12월 월급명세표에는 253만원이 찍혔지만 지난달 5월 급여명세서에서는 213만원이 찍혔다. 공기업 자회사가 용역회사와 다른 급여산정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여러 용역회사가 한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임금체계에도 혼란이 생겼다. 직전 수개월의 실수령금액으로 급여테이블을 만들다 보니 직무 및 경력에 따른 급여체계가 무너진 곳도 있었다. 10년차 직원보다 4년차 직원이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다른 공사 자회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국내 최대 규모 공사의 자회사 정규직으로 편입된 이슬기(가명)씨는 “용역업체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나쁜 노동환경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이씨에 따르면 기존 용역업체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던 직원들이 자회사 정규직으로 편입된 뒤 대거 현장직으로 파견 나가거나 연고지가 전혀 없는 곳에 배치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씨는 “입찰을 3~5년마다 한 번씩 하니까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인데 나는 용역업체 정직원이었다”며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에서 빠져나와 다른 불안정한 직장으로 들어간 셈”이라고 푸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여러 회사가 한 번에 편입되면서 일부는 기존 회사보다 안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며 “지난해 5월 발족해 이제 1년이 된 회사인데 우리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선 ‘인국공 사태’가 불거지면서 심적 부담까지 호소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공항에서 보안검색요원으로 근무하는 직원 B씨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히 힐끔힐끔 쳐다보는 등 눈치를 주는 것 같다”며 “식당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B씨는 “무조건 직고용을 해달라거나 월급을 올려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자회사로 고용하더라도 회사가 안정적이었으면 좋겠고, 이전과 같은 수준의 월급은 보전하는 등 최소한의 환경은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단순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기보다는 실질적인 근로환경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내세운 것은 바람직했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면서 당사자의 요구가 전혀 수용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다양한 회사가 한 번에 정규직 대상이 되면서 이전보다 환경이 나아질 사람, 아닌 사람들의 복합적 문제를 고려하는 정교한 작업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정규직화의 진정한 의미는 합리적 수준의 노동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라며 “수평 이동에만 천착하는 것은 정규직화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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