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봉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이 지난 6일 국회 문화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고 최숙현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그것이 운동선수의 세상이고 사회인 줄 알았습니다.”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팀에서 함께 경기하고 훈련했던 어린 선수들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도자·선배의 폭력에 굴복하고 묵인하는 관행을 ‘세상의 일’로 알고 살았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동료의 죽음 앞에서 용기를 낸 이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한 것은 이미 수차례 약속을 받아 왔던 ‘선수의 인권 보장’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 선수에 대한 인권침해 관련 조치·계획을 놓고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와 머리를 맞댄 뒤 “이번이 체육계 악습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스물두 살의 어린 선수를 죽음으로 내몰고서야 다시 드러난 위압과 폭력의 악습을 끊을 수 있을까.

박 장관은 “수사와 조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가해 혐의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을 단장으로 둔 특별조사단에서 최 선수와 가족의 신고 처리가 지연된 이유, 인권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 책임자들이 누구인지, 공모·회유는 없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한 유관기관 참석자들은 박 장관과 같은 입장을 공감하며 체육인 인권 보호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 장관은 다음달에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를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기존 25명인 인력 보강, 비상근 센터장의 상근 전환으로 위상과 권한을 강화한 기구로 발족시킬 의지를 표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현안 질의 자료를 보면 최 선수와 가족은 지난 2월 경주시청, 3월 대구지방경찰청·검찰청, 4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6월 대한철인3종협회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에서 벌어진 폭력·폭언·가혹행위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최 선수는 어느 기관·단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를 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확인을 얻지 못했다. 결국 지난 6월 26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 6일 최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과 선배 장모씨를 영구제명 조치했다. 가해 혐의를 받고 있는 같은 팀 선수 김씨에 대해서는 10년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이 징계는 최 선수가 세상을 떠나고 열흘 만에 이뤄졌다.

최 선수의 죽음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지뿐인 선언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혐의를 입증하는 체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대표를 지내고 현재 은퇴해 지도자로 전향한 체육계 관계자는 “진로가 지도자에 의해 결정되고, 고된 훈련을 견뎌야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스포츠의 특성상 선수는 팀 안에서 발생한 집단 괴롭힘을 고발하면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장 먼저 느낄 수밖에 없다”며 “신고를 접수하는 단계에서 피해자의 주장을 과장이나 허위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단계에서 좌절되는 피해 호소가 결국 제2, 제3의 최숙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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