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의회 총회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독일이 정부 주도로 사회 곳곳의 ‘유리 천장’을 깨는 작업에 돌입했다.

독일 일간 도이체벨레와 로이터통신 등은 8일(현지시간) 독일 정부가 성평등 촉진을 위한 국가 전략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남녀 임금격차 해소, 정부 기관 및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확대가 골자다.

성평등 촉진 전략은 9개 부문으로 나뉘어 시행되며 정부 각 부처와 산업계가 관련 목표를 설정, 현장에 적용할 방침이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독일 가족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촉진 전략은 모든 부처를 거쳐 조율되고 합의된 독일 역사상 첫 번째 평등 전략이며 ‘이정표’”라면서 “이런 방식으로 시행돼야만 성평등 문제가 단순히 여성부의 일이 아니라 모든 부처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기파이 장관은 “독일 의회에서 여성 의원 비율은 현재 최근 20년 중 가장 낮고, 지역 시장의 90%는 남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날 독일 의회는 성평등 전략을 현장에 적용하는 일을 전담할 기구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은 선거 입후보자를 정할 때나 당 내부 보직을 임명할 때도 여성 할당제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어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여성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기독민주당의 여성의원 비율도 26%에 불과하다. 주요 보직자 중 여성 비율은 6%에 그친다.

독일 정부는 기업에서 여성 고위 관리직의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여성 임원의 비율이 반드시 30%에 도달하도록 한 기업체의 수를 기존의 105곳에서 6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독일의 성평등 촉진 전략은 여성 총리가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문제에 있어 유럽 평균에 못미친다는 불명예를 털어버리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유럽성평등연구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독일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20% 적게 벌고,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15% 수준이다.

현지언론 더로컬은 “역사적으로 성평등 문제는 독일의 ‘해결과제’였다”고 전했다. 더로컬은 “서독에선 1977년까지 남성이 배우자의 허락 없이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면서 “통일 직전까지도 동독에서 91%의 여성이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서독에서 일하는 여성은 전체 여성 인구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재계 여성임원단체인 독일 여성감독위원회(FidAR) 모니카 슐츠 슈트렐로브 의장은 “이 전략은 돌파구”라면서 “연방 정부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고 상황을 모니터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슐츠-스트렐로브 의장은 “불행하게도 제재와 압력이 없이는 독일에서 (성평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독일 주요 대기업 30곳 중 현재 여성이 대표를 맡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지난해 독일 산업계에서 처음으로 유리천장을 깨고 소프트웨어업체 SAP의 공동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던 제니퍼 모건은 수개월만에 사임하고 또 다른 공동 CEO 크리스티안 클라인에게 대표 자리를 넘겨줬다.

기파이 장관은 “많은 기업들이 ‘여긴 기술 기업이고, 적합한 여성 인력이 없다’고 말한다”면서 “그럴 때 나는 ‘자격을 갖춘 여성은 고등학교에도, 대학교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리더 자리에 앉히라는 게 아니다. 경쟁력 있는 직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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