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뉴시스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애도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의 성(性) 비위를 폭로한 전직 비서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된다.

전날 오전 10시44분쯤 종로구 가회동 소재 시장 관사를 나온 박원순 시장은 이날 0시쯤 북악산 숙정문 인근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특정되지 않았으나, 최근 성추행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박 시장의 비서로 근무했던 여성 A씨는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비서 일을 시작한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으며, 본인 이외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신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박원순 시장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근무 중 집무실 내부에 있는 침실에서 A씨를 끌어안고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고, 퇴근 후에는 수시로 텔레그램으로 음란한 사진과 문자를 보냈으며 A씨의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A씨는 서울시청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최근 사직 후 정신과 상담 등을 받던 중 엄중한 법의 심판과 사회적 보호를 받는 것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선결돼야 한다고 판단해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고 고소장에 밝혔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글. 딴지일보 게시판 캡처

박원순 시장에게 제기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의혹은 그간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 왔던 그간의 행보와 대비돼 충격을 더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부 박원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파헤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서울시청이 공개한 열람 자료를 통해 2017년 서울시장 비서실에 근무한 이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고 사건의 본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대호 전 통합당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입에 발린 소리 하고 싶지 않다”면서 “부디 ‘공소권 없음’으로 덮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주시라”고 요구했다.

류영재 대구지법 판사는 “고인에 대한 고소가 있었던 점이 확인된 이상, 고소인(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음모론을 퍼뜨리는 분들은 차단하겠다”며 “고소 내용이 진실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아니나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 특히 음모론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10일 새벽 서울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을 과학수사대원들이 수습하고 있다. 뉴시스

생전 박원순 시장은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 왔다. 그는 1993년 국내 1호 성희롱 재판으로 불리는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맡아 유죄를 이끌어냈고, 이 사건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는 ‘성희롱은 불법 행위’라는 인식이 생겼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고소장 말미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이 된 뒤에는 “서울을 성 평등 도시로 만들겠다”며 여성친화적 시정에 주력했다. 그는 2017년 1월 ‘서울시 여성리더와 함께 하는 신년회’에서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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