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부동산과 주식, 금 등 다양한 자산의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넉 달가량 이어지고 있다.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이라는 한탄만 나온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초(超)저물가 추세도 코로나19 사태로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자산 가격을 올린 요인으로 지목되는 건 바로 ‘유동성’이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자금을 풀었고, 이렇게 단기간 급증한 자금이 산업 생산과 소비보다 투자 시장으로 대거 흘러들면서 자산 가격만 오르고 월급과 물가는 오르지 않는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얼마나 타당할까.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유동성 확대가 자산 가치 급등으로 이어진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중요한 건 유동성 그 자체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라고 말하는 지적도 있다. 시장에 실제로 돈이 풀린 것보다 ‘향후 시장에 돈이 계속 넘칠것이고, 그로 인해 자산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런 추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장에 돈 얼마나 풀렸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온 저금리 추세로 전 세계 유동성은 꾸준히 우상향해 왔다. 여기에 올 초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불을 지핀 양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광의통화량(M2)은 3018조6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섰다. 한 달 새 34조원(1.1%) 늘며 월 증가폭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M2는 협의통화(M1)에 저축성예금을 합한 것으로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을 의미한다. 통상 시중 통화량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M2보다 더 현금 추세에 가까운 M1의 경우도 같은 달 1012조3000억원으로 처음 1000조원대에 진입했다.

이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 및 금융권의 대출 확대 방침이 맞물린 결과다. 기준금리는 지난 3월 17일 0.75%에서 5월 28일에는 0.50%로 코로나19 이전(1.25%)보다 0.75% 포인트나 급락했다. 유동성 가뭄에 시달리는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도 동원됐다. 올 5월 은행권 기업대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11%를 기록했고, 지난 4월(10%)보다 1% 포인트 더 올랐다.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 등의 소상공인 1차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지난달까지 13조4000억원이 풀린 상태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통화량 확대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M1 증가율은 전년대비 약 30%를 기록했고, M2 역시 전년 대비 20%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 대책으로 2조3000억 달러(약 2745조원)의 ‘바주카포’ 부양책을 발표한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총 1조3500억 유로(약 1830조원)의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으로 경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 가계에 직접적으로 뿌려진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도 주목된다. 정부가 14조원 규모로 편성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약 99%가 지급돼 오는 8월 말까지 시장에 풀릴 예정이다. 올 4월 기준 국내 본원통화(현금통화+지급준비금) 규모가 2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유동성이 약 7% 증가한 효과로 풀이된다. 자산 가치 상승의 원인으로 유동성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왜 물가는 안 오른다고 할까
통화량이 늘어났는데 정작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바 유동성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돈맥(脈)경화’ 현상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총통화(M2 평잔)로 나눠 산출한 통화유통속도는 0.68로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올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4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0.78~0.85)보다 더 낮은 수치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격적 재정 확대에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필요 주체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물 경기가 안 좋으니 돈을 풀어야 하는데, 이게 실물 경기로 흘러가지 않으니 문제”라며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고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아 돈이 돌고 있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늘어난 통화량이 물가를 밀어올리기까진 시차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든 실물 경제가 점차 회복되는 상황에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 4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공포를 확산시켰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시세도 최근 배럴당 40달러 선을 회복한 상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물가 상승의 구조적인 제약 요인이 있지만 내년까지 정책 노력의 일환으로 물가는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식·부동산 언제까지 오를까
일반 소비자들은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물가 상승은 결국 안전 자산 및 실물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전성과 실물 보유라는 특성을 모두 가진 부동산 가격은 최근 수년간 끝없이 오르며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있고, 주식시장도 유동성 증가와 언택트(비대면) 열풍을 타고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이러한 상승세는 유동성 확대가 지속되는 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시장의 대체적 견해다. 한편으론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실물 경제 여건 대비 자산가격만 과도하게 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버블(거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미 연준의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에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최대 7000억 달러(약 840조원)의 대출이 부실화하고, 주요 은행 가운데 4분의 1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풀린 돈이 훗날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 파티’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일단 코로나19 2차 확산세가 뚜렷해지면서 각국 정부의 유동성 정책이 재차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5~6월 경제지표가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달성한 것과 다르게 7월 지표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스탠스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추가 매수 여력이 45조원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서는 건 앞으로 돈이 계속 풀리고, 이로 인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라도 집을 사려는 30대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시장에는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의한 구매)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비교적 적은 언택트·바이오 업종의 주가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중이다. 그러나 유동성 기조가 꺾이고 투자 주체들의 심리가 허물어지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자산 가치 상승 현상은 유동성과 투자자들의 심리라는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유동성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면 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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