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지역에서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이 즉시 회수되는 6·17 부동산 대책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됐다. 투기꾼들의 주택 추가 구입을 막기 위해 돈줄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 상승은 갭투자자들의 투기에 의한 것이고, 그 밑천인 대출을 규제하면 이를 잡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정책 의도가 읽힌다.

그런데 정작 무주택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현금부자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생애 최초 50%) 규제로 목돈을 마련하느라 놓친 매물들이 현금부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9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단호했다. “예외는 없다”는 것이 국토교통부 입장이다. 다주택자의 취득세, 양도세, 보유세까지 모두 높이는 새 대책을 추가로 내놓은 만큼 우려는 작다는 것인데, 정말 이번에는 약발이 먹힐까.

국민일보는 21·22번째 부동산 대책 방향성이 제대로 설정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840가구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12일 전수 조사했다. 임대사업자 등록 인센티브 혜택의 폐해를 지적한 기사 ‘정부가 깔아준 다주택 꽃길’(국민일보 6월 29일자 1·4·5면 참조)에서 분석했던 아파트다. 지난 분석 당시 5억7000만원이던 31.98㎡ 실거래가는 불과 2주만에 6억원으로 뛰었고, 호가는 6억5000만원으로 튀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가격 상승률은 111%에서 122%로 높아졌다.

국민일보는 본격적인 가격변동이 시작됐던 2015년 이후 실거래를 모두 뜯어봤다.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는 부동산 광풍과 핀셋규제의 풍선효과를 모두 맞으며 현금부자들의 놀이터가 돼 있었다. 실거주를 위한 거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거래 중 99%는 아파트 매입 후 주소지 변동이 없는 전형적인 투자용 거래였다. 그런데 거래 세 건 중 두 건은 주택담보대출이 없었다.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여윳돈으로 채워 넣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런 매매패턴에서는 대출을 조여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정부 대책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 사이 실수요자들은 내 집 장만을 포기했다. 2015년 1억원에 조금 못 미쳤던 전세가는 이제 막 1억원을 넘겼지만, 매매가는 2억원 수준에서 3배 가까이 올랐다.


현금부자 갭투자 몰린 서울 소형 저가아파트
‘대기, 보류, 대기, 보류….’
지난 8일 찾은 상계주공5단지 인근 A공인중개사 사무소 전산망에는 다량의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포털사이트 부동산 검색에도 15개의 매물이 잡혀 있다. 그런데 매물 옆에 대기 혹은 보류 표시가 가득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와서 집 주인에게 전화하고 계좌번호 달라고 하면 ‘나중에 팔겠다’고 판을 깨요. (현재 호가인) 6억5000만원에 들어가겠다는 데도 (집주인은) 아니래.”

집값 상승세를 보고 더 기다리겠다고 한 매물들이다. 이렇게 집주인이 되돌린 매물 옆에는 대기 혹은 보류 표시가 적혔다.

-어떤 사람들이죠.
“주공5단지는 다 전세 낀 아파트에요. 자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집을 안 내놔요, 그 돈으로는 갈 데가 없으니까. 이렇게 기다리고 금액 올리고 하는 건 다 투자자 매물이에요.”

현장의 공인중개사들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집값 상승을 주도한 세력이 갭투자자라고 봤다. 갭투자자들이 서로 물건을 주고받으며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분석과는 다른 설명이 하나 더 추가 됐다. “그 사람들은 빚을 안 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2015년 이후 손바뀜이 발생한 상계주공5단지 매물 등기부등본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지난달까지 발생한 매매거래 443건 중 매수자가 해당 주소지로 전거 등기한 기록은 6건(1.4%)에서만 확인됐다. 나머지 98.6%의 집주인 주소는 상계주공5단지 밖이었다. 주소를 옮기지 않은 매수자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은 보증금을 끼고 세입자를 승계 거래한 갭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집주인이 빚을 내서 집을 산 흔적은 적었다. 전체 거래 443건 중 매매일 직후 3개월 내 금융기관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지 않은 매물이 283건(63.9%)이나 됐다. 거래 3건 중 2건은 주택담보대출 없이 집을 샀다는 뜻이다. B공인중개사 대표는 “전세를 살다가 돈 모아서 여기 집을 산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집을 산 건 대부분 현금 많은 외지인들”이라고 말했다. 여윳돈을 들고 있던 현금부자들이 서울에서도 집값이 저렴한 이곳에 몰려와 집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여기가 서울에서도 그나마 저렴했으니까요. 어차피 대출은 (규제지역이라) 40%까지 밖에 안 나오니까 현금 있는 사람들이 와서 샀던 거죠.”


돈은 광풍을 타고 빈틈으로 흘렀다
구체적인 매매패턴을 분석해 보니 집값을 올린 현금부자의 정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상계주공5단지는 노원구의 대표적 저가 아파트였지만 창동차량기지 이전과 재건축 이슈 등 개발 호재로 주목받으며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소문을 먼저 접한 서울사람들이 몰리면서 1차 상승이 이뤄졌고, 그 소문을 들은 지방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2차 상승을 이끌었다. 가격이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의 불안감을 느낀 20, 30대가 막차에 올라섰다. ‘서울사람→외지인→젊은 층’으로 이어진 매수자 행렬은 핀셋 규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했다.

2015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상계주공5단지를 사들인 건 대부분 서울사람들이었다. 이 시기 서울 매수자 비중은 68.1%로 지방 외지인(31.9%)을 배 이상 웃돌았다. 이때는 같은 상계동에 살면서 투자용으로 주공5단지 아파트를 산 경우도 많았다. 이동범(가명·74)씨는 2016년 여름 상계주공6단지에 살면서 5단지 매물을 2억4000여만원에 대출 없이 구입했다. 상계동 주민인 김재연(가명·49)씨도 2015년 5월 2억원에 대출 없이 5단지 아파트를 샀다. 이 시기 집을 산 서울 매수자 149명 중 이들처럼 주택담보대출 없이 거래한 사람은 91명(61.0%)이었다.

매매 흐름은 2017년 여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2017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는 지방 외지인 비중이 50.7%로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흐름이 보다 명확하다. 2015~2017년 줄곧 30%대에 머물던 지방 외지인 비중은 2018년 38건(55.9%)으로 서울 매수자 비중(44.1%)을 뛰어 넘었다. 8·2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식지 않은 부동산 광풍이 서울 저가 아파트를 노린 것이다. 지방 외지인 비중은 2019~2020년에도 40%대를 유지해 서울 매수자 비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전체 443건 중 집주인이 지방 외지인으로 바뀐 건 181건(40.9%)이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현 대한부동산학회장)는 “수요자들은 지방과 수도권 사이의 양극화를 이미 경험하고 습득했다”며 “자산 가격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걸 아니까 서울의 집을 사려고 했고, 노원의 저가 아파트까지 파고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장 공인중개사들도 지방 외지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거래한 것 중에) 지방에서 와서 매매한 게 30%는 되는 것 같아요. 지방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집 없으면 바보 취급 받으니까요.” (C공인중개사 대표)

“지방사람들이 오지도 않고 집을 많이 샀지. 이 때 아니면 서울에 집 못살 것 같으니까요. 그게 집값 상승기류 타는데 부채질을 했죠.” (D공인중개사 대표)

지방 외지인도 빚 없이 아파트를 산 경우가 많았다. 이경선(가명·64)씨는 2016년 봄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3채를 사들였다. 본인은 충남의 주택에 살면서 서울의 아파트에 갭투자한 것이다. 3채의 실거래가는 총 6억4000만원이었다. 이씨는 이 중 한 채에서만 1억여원의 대출을 받고 나머지 두 채는 빚 없이 사들였다. 3채 가운데 한 채는 지난해 5억여원에 팔아 3억원 가까운 차익을 얻었다.

가격이 오른 아파트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건 젊은 층이었다. 거래 당시 20~30대였던 매수자 비중은 2015년 30.9%에서 2020년 56.25%로 뛰었다. 8·2 대책이 나오고 서울에 집을 사는 게 더 어려워진 2017년 8월을 기점으로 보면 1980년생 이하의 거래 비중은 20.3%에서 두 배 가까운 39.3%로 늘어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젊은층이 봤을 때 지금 아니면 서울에 집을 못살 것 같고, 강남은 비싼데 여기는 가격도 적당했다”며 “융자받고 전세를 껴서 사려고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젊은층의 거래 비중이 대폭 늘어난 2020년에는 근저당 있는 거래도 많았다. 2030세대의 거래 비중이 가장 적었던 2018년(25%)에는 근저당이 잡힌 거래가 20.6%뿐이었는데 젊은층 비중이 56.3%까지 늘어난 2020년에는 대출이 껴있는 거래가 53.1%에 달했다. 현금부자들이 올려놓은 집값을 충당하기 위해 젊은층이 빚을 내 집을 샀다는 뜻이다.

정서은(가명·27)씨가 그랬다. 화곡동에 사는 정씨는 올봄 3억원 넘게 빚을 내 5억2000만원에 상계주공 5단지 아파트를 샀다.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 셈이다. 중계동에 사는 권우성(가명·27)씨도 3억원대 대출을 받아 5억원대에 집을 구입했다. E공인중개사 대표는 “우리도 안타까운 게 2016년 2017년에 현금들고 와서 갭투자한 사람들은 거의 3억원 이상을 벌어서 나간다. 근데 진짜 대출받고 보험 깨고 속된 말로 ‘영혼 팔아서’ 그걸 잡는 걸 보면 속상하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니까 지금이라도 잡아야 되나 부담이 되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 곳을 첫 보금자리로 꿈꾸던 실수요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상계주공6단지에 전세를 살던 한 신혼부부는 전세금에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태 해당 단지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다고 했다. 집값이 오르는걸 보면서 매일매일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하다가 집값이 6억5000만원을 넘어가 버리자 전화가 뚝 끊겼다. 도저히 6억5000만원에 맞춰 대출을 받을 수가 없어 구입을 포기한 것이다. 해당 신혼부부와 통화했던 공인중개사는 “여기 나가서 지방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냥 전세 연장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때 6억5000만원도 비싸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가격대 매물도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F공인중개사 대표도 “실수요자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올라버렸다는 게 문제”라며 “세입자들은 불안해한다. 영영 집을 못살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사야 하냐는 고민을 많이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6·17 대책 통할까
상계주공5단지에서 만난 현장 공인중개사들은 갭투자를 막기 위해 대출을 조인 6·17 대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비교적 대출 받기가 용이했을 때도 현금부자 갭투자가 많았던 단지인데, 대출규제를 강화한다고 집값이 잡히겠냐며 의문을 표했다. 오히려 다주택 투기세력만을 타깃으로 하는 이른바 핀셋 규제 방식이 되레 서민의 꿈을 짓밟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현금 가진 사람들은 재산 증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고 오히려 격차가 심해지겠죠. 지난번 대책 나오고 전체적으로 5000만원 정도 또 올랐어요. 현금 없는 사람은 아예 더 살수가 없고. 게다가 전세가도 오르는데 더 상황이 악화되는거죠.”(F공인중개사 대표)

“대출규제로 없는 사람들 집 더 못 사는 거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먹는 구조가 됐어요. 돈 있는 부모들이 애들 이름으로 집 사주고 이러니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못 사고 부가 대물림 되는 거죠.”(G공인중개사)

전문가들도 우려를 드러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중심이 대출 규제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을 딱 집어서 규제하는 방식인데 그런 핀셋을 빠져나가는 길은 너무나 많다”며 “현금부자에게 이런 규제가 먹히지 않으면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같은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자금이 워낙 많아 보유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부동산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유동성자금을 막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 되지 않는다”며 “어떤 대책을 내놔도 ‘돈이 많은데 사겠다’는 사람들을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서진형 교수는 “실질적으로 자금이 없거나 무주택자인 사람들이 대출을 받는 것”이라며 “대출규제를 하면 집을 매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확대해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금부자 갭투자자의 기대심리를 누르려면 실질적인 부담감을 느낄만한 시그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아파트 값을 잡으려는 정책방향은 오히려 그 지역을 주목하게 해 그 지역 아파트값을 뛰게 만든다. 사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누를 수 있는 건 실질적 부담감”이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규제 무풍지대]
집값은 수억 상승, 세금 폭탄은 몇백… 7·10 종부세의 빈틈 [이슈&탐사]
‘지방만 집값 폭락?’ 22번 부동산 대책 최악의 시나리오 [이슈&탐사]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