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업적과 ‘미투’ 사이… 홀연히 떠난 박원순, 양분된 대한민국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경계선을 그었다. 그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해야 할 것인지,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어떻게 그를 추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사흘이 지난 12일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극명하게 양분됐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나뉘어진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온라인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10시 현재 100만4000여명이 헌화했다.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고1 남학생은 “박 시장은 나의 롤모델이었다”며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건 이곳에서 9년간 근무하셨던 분에 대한 예우”라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만난 시민 상당수는 인권변호사로서의 박 시장의 삶과 시민사회를 이끌어온 공적은 기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박 시장의 과오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서울특별시장(葬)에 대한 반대 청원’에는 이날 오후 10시 현재 55만명이 넘는 이들이 동의 서명을 했다. 박 시장에 대한 추모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고소인 A씨에 대한 ‘집단적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지영 건국대 교수는 “가족장이 아닌 공식적인 장례는 침묵을 깨고 겨우 말문을 튼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온라인에서는 A씨의 신상을 찾는 움직임과 ‘왜 이제 와서 의혹을 제기하느냐’ ‘의혹 제기의 배경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박 시장의 과오를 규명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도 우리를 퍽 혼란스럽게 하는 지점이다. 박 시장을 고소한 A씨의 피해 사실 여부를 입증함으로써 시민들이 그의 공과를 따져볼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A씨는 박 시장의 사망 원인을 제공했다는 일각의 비난을 견뎌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박 전 시장 역시 고소 내용의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채 그가 해왔던 활동과 가치까지 매도되는 상황에 처했다.

박 시장의 죽음을 바라보는 의견의 대립은 진보와 보수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마찰음이 나오고 있고,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혼란 속에서도 지켜야 할 선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주는 것이 사회적·윤리적으로 옳다고 본다”면서도 “고인이나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과 지인을 공격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무적인 판단은 조문 이후에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망자에 대한 모독 같은 극단적 상황 만은 막자는 것이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