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복음주의자 J I 패커 박사 별세

제임스 패커가 지난 2016년 시력을 잃은 후 한 교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나이듦은 하나님이 더 나은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자”고 말했다. TGC코리아 제공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J. I. Packer) 캐나다 리젠트칼리지 명예교수가 17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그는 4년 전 황반변성으로 실명 이후 자신은 이제 천국을 향한 여정에 있음을 담담히 밝히기도 했다(국민일보 2016년 1월 17일자).

패커 교수는 영국 성공회 소속 목회자를 지냈고 이후 캐나다에서 활동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등과 함께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90여년 생애 중 70년을 저술 활동과 교수사역을 했다.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말했다. 또 성경적 권위를 지키는 데 힘썼다.

패커 교수는 자신을 일컬어 ‘사람들을 진리와 지혜의 오래된 길로 부르는 목소리’로 지칭했다. 그는 ‘새로울수록 진실하다’ ‘최근의 것만 괜찮다’는 식의 현대적 의식의 흐름에 역행하고 저항하는 데 삶을 바쳤다.

제임스 인넬 패커는 1926년 7월 22일 영국 글로체스터시어 북부 트위닝 마을에서 성공회 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로 진학한 후 기독인연합회 도서관에 기증된 책을 정리하다가 17세기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저작물을 대거 만나면서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믿는 신앙인이 됐다.

1948~1949년엔 매주일 저녁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채플에서 당시 50세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었다. 패커 교수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 탄복하게 되는데 그 이전까지는 한 번도 그런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마치 전기쇼크를 당한 것 같았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패커 교수와 존스는 서로 알게 되면서 가까워졌고 패커는 존스에게 청교도적 관점을 이해시키고 적용하는 정기 모임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20년간 지속된 ‘청교도 콘퍼런스’의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 패커 교수의 모습. TGC 코리아 제공


패커 교수의 중요 저작 중 하나는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1958)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역사적 개신교의 위상을 저술한 것이다. 책은 당시 팽배하던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답변이자 변증의 성격을 띈 것으로, 패커는 확고한 성경무오성을 설파하는 것을 비롯해, 성경 말씀이 고차원적인 관점을 가진 진리임을 힘있게 제시했다.

근본주의라 하면 좁은 의미의 우파적 기독교제국의 관점으로만 인식되고 있는데, 패커 교수는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크리스천의 역사, 신학적 유산의 공통점을 서술하는데 힘썼다. 패커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균형 잡힌 성경해석과 합리성, 역사적 맥락 등을 기반으로 설명했다.

그의 대표작은 기독교 기본진리를 정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이 책으로 패커 교수는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오늘의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고 썼다.

패커 교수는 1977년 R.C. 스프롤, 존 게르스트너, 노먼 가이슬러, 그레그 반센 등과 함께 미국에서 콘퍼런스를 열고 국제성경무오류협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는 1978년, 성경은 무오하다는 시카고 선언을 이끌어내는 기초가 됐다. 칭의와 관련해서도 ‘칭의의 여러 얼굴들’(1986) 등을 펴내고 “끊임없이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가 있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며 형태가 왜곡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실로 생명줄이자 송영이며, 찬양의 외침이자 승리의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패커 교수는 1979년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칼리지로 자리를 옮겨 교수로 사역하다 96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도 명예교수로서 강의와 강연 등을 이어갔다.

최근 패커 교수의 모습. TGC 코리아 제공


패커는 종종 자신이 영향을 받은 기독교 고전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추천 고전에는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 J. C. 라일의 ‘거룩’, 존 번연의 ‘천로역정’, 리처드 백스터의 ‘참된 목자’, 마르틴 루터의 ‘의지의 노예에 대하여’, 그리고 존 오웬의 저작들이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고전은 ‘천로역정’이었다. 패커 교수는 천로역정을 매년 한 번씩 읽었는데 2016년 그가 시력을 잃을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패커 교수 후반기 생애에서 공헌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ESV(the English Standard Version) 성경의 편찬이었다. 미국의 크로스웨이북스 출판사가 패커 교수를 총괄 편집자로 초청하면서 시작됐다.

패커 교수는 삶 속에서 구약의 ‘전도서’를 통해 지혜를 얻기도 했다. 젊은 시절 한때 냉소주의에 빠졌던 그는 전도서를 읽고 치유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전도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주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라며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지혜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에 대해 “개혁교회는 은혜의 교리와 은혜의 삶을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교회 안의 개인주의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기념하는 교회 자체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현대 교회를 향해 4가지 영어 단어로 권면했다. “모든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시오”(Glorify Christ every way).

D. A. 카슨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교수는 18일 패커 교수가 남긴 유산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중요성, 청교도 신학의 재발견 등을 꼽았다.

패커 교수는 ‘현대판 청교도’ 또는 ‘마지막 청교도’로도 불린다. 이신칭의 교리의 수호, 자유주의와 진보적 신학에서 보수적 복음주의 가치를 옹호한 점은 주목할만하다. 캐나다성공회(ACC)가 동성결혼에 찬성했을 때 그가 속한 교회가 ACC를 탈퇴한 것, 그의 성공회 주교 면허를 반납한 것은 최후의 청교도로서의 마지막 신앙 행위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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