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은 라이브가 본질”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 매진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규모 줄이고 좌석 거리두기 시행

22일 오후 7시30분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

22일 오후 7시10분쯤이 되자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뮤직텐트 앞은 제17회 평창대관령음악제(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을 보러 모인 관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가 생전에 남긴 문구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를 슬로건으로 내건 올해 대관령음악제는 3주간 ‘전원’ ‘영웅’ 등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약 3주간 교향악·실내악·독주 등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 2월 이후 처음 열리는 대형 음악제여서인지 관객들에게서는 마스크 너머로 들뜬 기분이 엿보였다. 배우자와 함께 평창에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고효진(66)씨는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될 줄 알았는데 라이브 공연을 연다고 해 부랴부랴 예매했다”며 “클래식을 원래 좋아하지만, 올해 축제는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현장 예매를 위해 들렀다가 표가 매진돼 발길을 돌리는 관객도 보였다.

20분 뒤 손열음 예술감독의 인사말로 시작한 대관령음악제의 개막공연은 이 같은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 듯 보였다. 개막작은 베토벤 생애 최고의 대작으로 여겨지는 교향곡 제9번이었다. 무대를 꾸민 춘천시향(지휘 이종진)과 소프라노 홍혜란·메조 소프라노 김효나·테너 최원휘·바리톤 최인식·춘천·원주시립합창단은 70여분 동안 장대한 선율을 풀어 놓았는데 긴장이 치닫는 4악장까지의 완급조절이 돋보였다.

공연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규모였다. 코로나19로 최근 공연장에는 ‘무대 위 거리두기’가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향이 지난 5월 온라인 공연에서 처음 도입한 무대 거리두기는 독일 등에서 먼저 선보인 방역 모델로 연주자 간 일정 간격을 벌리는 것을 말한다. 최근 선보인 대개의 공연에 1.5m 규칙이 적용됐는데 한정된 무대 공간으로 많은 연주자가 오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오케스트라(약 60명)와 합창단(약 75명)을 합쳐 약 130명 정도가 오른 이날 무대는 최근 웅장한 교향곡 공연이 사라져 아쉬워했던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K방역을 세계 공연계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올해 대관령음악제는 ‘안전한 축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실험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최대한 간격을 벌려 50~100c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고 오케스트라 피트 등을 걷어내 객석과 무대의 거리를 벌렸다. 관악기 주변에는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한 약 4대의 비말 차단막도 설치됐다.

평창대관령음악제 뮤직텐트 앞에 붙은 거리두기 스티커

관람객 방역을 위해서는 주 공연장인 뮤직텐트와 콘서트홀 입구에 컨테이너를 닮은 2m짜리 대형 대인 소독기를 설치했다. 평창군이 구비한 5~6대 중 4대를 들여온 것으로 2~3초를 걸어 지나가면 자외선으로 전신을 소독하는 방식이다. 이밖에도 손소독제와 소독 티슈 등 기본 방역물품이 비치됐고, 뮤직텐트(1000석)와 콘서트홀(600석)은 좌석 거리두기를 위해 각각 450석, 366석 규모로 재조정됐다. 자신을 대관령음악제 3년차라고 소개한 직장인 이다인(30)씨는 “서울에서 올 때는 걱정도 조금 있었는데 방역이 생각보다 잘 돼 있어 안심하고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관령음악제를 주최·주관하는 강원도와 강원문화재단은 이번 음악제가 다른 축제가 참고할 방역 선례로 남길 바라고 있다.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공연예술은 라이브가 본질인 예술이기에 개최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방역에 최선을 다한다면 축제 개최가 가능하다는 게 강원도와 재단의 판단이었다”며 “축제가 안전하게 마무리된다면 아티스트들은 물론 도민과 주변 상권, 시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 달 8일까지 이어지는 대관령음악제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 정상급 악단을 누빈 세계적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이 지휘봉을 잡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25일),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신예 임윤찬이 함께 꾸미는 듀오 피아노 무대(31일) 등 굵직한 메인 콘서트 8개가 더 남아있다. 강릉 자동차극장, 삼척 조각공원 등에서 열리는 ‘찾아가는 음악회’도 다섯 차례 열린다.

다만 메인 콘서트(12회)와 찾아가는 음악회(12회) 등 총 34회 공연으로 구성된 지난해 대관령음악축제에 비하면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규모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김 강원문화재단 대표는 “예산에서 3억가량의 티켓 수입이 좌석 거리두기로 줄어든 부분이 있지만, 예술적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와 비슷한 20억 정도가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여름과 겨울 축제뿐 아니라 대관령음악제 ‘강원의 사계’ 타이틀을 달고 선보였던 봄·가을 축제도 더 크게 키워 강원도민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확대할 것”이라며 “강원도와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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