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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과 배신의 굴레 끝 ‘낙동강 오리알’된 이스타항공

제주항공이 23일 끝내 이스타항공과의 '노딜'(인수 무산)을 선언하면서 전북을 기반으로 한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은 출범 13년 만에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연합뉴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가가 소유한 이스타항공이 결국 파산 수순에 내몰렸다.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이던 제주항공은 23일 “불확실성이 크다”며 포기 의사를 공식 밝혔다.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당장 1600여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스타항공은 오랫동안 자본잠식 상태에서 허덕였지만 이를 타개할만한 경영개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대신 다른 계열사로부터 돈을 빌려와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선 이 의원 자녀들의 편법증여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이 같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M&A가 무산됐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이 의원 일가 책임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 의원은 그러나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수 무산은) 제주항공 책임이며 이스타항공을 살리기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항공사’ 슬로건을 내걸며 출발했던 저비용항공사(LCC)가 몰락 위기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주주는 3000만원짜리 페이퍼컴퍼니
지금의 이스타항공 지배구조를 이해하려면 201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창업주인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 관련 주식이 전혀 없다. 대신 그의 자녀들이 2015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한 이스타홀딩스가 최대주주다. 딸 수지씨와 아들 원준씨는 2015년 10월 30일 이스타홀딩스를 설립했고, 두 달 뒤인 12월 31일 이스타항공 지분 68.0%(524만2000주)를 단숨에 사들였다. 당시 수지씨와 원준씨는 각각 26살, 16살이었고 이 의원은 19대 국회의원이었다.
이 의원 자녀들이 이스타항공 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도 일가가 도움을 줬다. 홀딩스에 지분을 넘긴 회사는 IMSC와 새만금관광개발이라는 두 회사다. 새만금관광개발은 2008년 6월부터 이스타항공 최대주주 자리를 지켜온 회사였고, 그 새만금관광개발의 최대주주가 바로 IMSC였다. IMSC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당시 대표이사는 이 의원의 형인 이병일씨로 돼 있다. 삼촌이 조카들에게 알짜 계열사인 항공사를 넘겨주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지분을 살 때 지불한 금액은 약 100억원이다. 이 자금은 서래1호조합이라는 사모펀드에서 나왔다. 조합은 정체가 정확히 공개된 적은 없다. 다만 이스타항공 고위관계자는 “돈 많은 강남 투자자 여럿이 만든 투자조합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2015년 11월 10일 홀딩스에 80억원을 대여해 줬다. 향후 홀딩스가 매입할 이스타항공 지분 10%를 담보로 잡았다. 이 의원 자녀들은 아직 손에 쥐지도 않은 지분 10%로 이스타항공 지분의 68%를 사게 된 셈이다. 이는 자기자본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회사를 사들이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의 전형적 형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 의견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편법증여를 의심한다. 참여연대는 국세청에 제출한 탈세 조사요청서에서 “이 의원이 보유한 지분을 자녀들에게 저가로 직접 양도하면 높은 세금을 물어야 하니 중간에 여러 주주들을 통한 매각 단계를 거쳐 직접 증여로 보이지 않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헐값 취득 의혹도 제기된다.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김경율 회계사는 “대여금 80억원에 대한 담보가 이스타항공 지분 10%에 해당한다면 역으로 당시 이스타항공 가치를 800억원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 의원의 자녀들은 사실상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800억원짜리 회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시 비상장주식 시장에서는 이스타항공 주식은 주당 1만원 중반대에 팔리고 있었다고 한다. 100억원으로 524만2000주를 산 이 의원의 자녀들은 주당 2000원 정도에 지분을 사들인 셈인데, 시장거래가격보다 현저히 낮았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측은 홀딩스가 돈을 대여해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상한 등장인물
홀딩스가 조합으로부터 돈을 빌려올 때 힘을 써준 인물은 변호사 박모씨다. 강남 전주(錢主)들을 그가 연결해 줬다고 한다. 그는 이 의원과 전주고 동창으로 오랫동안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4월~2015년 3월 이스타항공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박씨는 홀딩스에서 조합에 제공한 담보 지분 10%(77만1000주)를 에스크로(제3자 예치) 형태로 맡아 보관하고 있었다. 수지씨와 원준씨가 이스타항공을 손에 쥐는 과정에 이 의원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담보를 안전하게 보관했어야 할 박씨가 이 지분을 개인적으로 써버린 것이다. 박씨는 2017년 2~4월 77만1000주 중 40만주를 K사에 담보로 주고 33억원을 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5000억원 규모의 환매중단 사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 김재현 대표로부터 15억원을 빌리며 20만주를 담보로 잡았다.
의아한 점은 박씨와 돈을 빌린 두 대여처와의 관계다. 박씨가 돈을 빌린 시기인 2016년 K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박씨는 이 회사의 회장으로 등록돼 있었다. 쉽게 말해 남의 주식을 담보삼아 자신의 회사에서 33억원을 빌려갔다는 얘기다.
홀딩스 측은 2017년 10월 무단으로 넘어간 주식에 대해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소송을 진행했다. 이듬해 1월에는 서울중앙지검에 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박씨가 2월 돌연 잠적하면서 사건은 지금까지 기소중지 상태다. 홀딩스는 그해 6월에 K사에 “주식 40만주를 돌려달라”며 소송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옵티머스 김 대표 역시 K사와 연관이 있다. 박씨가 이스타홀딩스 측에 낸 ‘사실관계확인서’에는 김 대표를 ‘본인의 친한 후배’라고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이피디벨로프먼트라는 이름의 회사를 갖고 있었는데, 이 회사를 통해 K사의 전환사채(CB)를 보유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이 채권을 옵티머스가 3억5700만원에 사들이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 의원은 김 대표라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 이 사안은 박씨가 홀딩스 주식을 무단으로 팔아넘긴 횡령·사기 사건이며 홀딩스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 지 7개월여만인 23일 '노딜'(인수 무산)을 선언하고 등을 돌리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사가 그동안 인수·합병(M&A) 진행 과정에서 셧다운 지시 여부와 선결 조건 이행 여부 등을 놓고 입장차를 보이며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만큼 향후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제주항공이 선지급한 이행보증금 119억5천만원과 대여금 100억원의 반환,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 1천700억원 발생과 이를 유발한 셧다운 등에 대한 책임 소재, 선결 조건 이행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멈춰서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불거지는 창업주 ‘책임론’
이스타항공은 2007년 설립 직후부터 이 의원이 공을 들였던 이스타항공그룹 핵심 회사였다. 이 의원을 대신해 경영을 총괄했던 또 다른 형 경일씨의 2013년 횡령·배임 사건 판결문을 보면 이 의원 일가는 2000년대 초반 KIC라는 견실한 플랜트 제조 회사를 인수하고, 각종 신사업을 위한 계열사를 우후죽순 설립하면서 이스타항공그룹을 형성했다.
KIC는 그룹 내 일종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이스타F&P라는 계열사를 세워 꾸준히 이익을 내던 KIC로부터 자금을 빌려오고, 이 자금을 다시 이스타항공과 반도산업 등 사실상 이 의원이 소유했던 다른 계열사로 밀어 넣는 식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2012년 이런 방식의 계열사 지원으로 이스타F&P가 입은 손해가 최소 328억원에 달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의원의 자녀들이 소유한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주주가 된 2015년 12월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6년 단거리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잠깐 흑자전환에 성공하긴 했지만 2011년부터 빠진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5~2016년 이스타항공은 주식시장 상장(IPO)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기대치가 낮아 결국 무산됐다.
상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조달에 실패한 와중에 LCC 업계 가격경쟁은 심화됐다. 2017년 터진 ‘사드사태’로 중국 노선 매출이 급감했고, 지난해 터진 한·일 갈등까지 겹치며 단거리 노선에 집중했던 이스타항공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는 지난 1분기 기준 마이너스 1042억원에 달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 의원 일가는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달 29일에서야 일가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주식을 모두 헌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사실상 휴지조각인 지분을 내주면서 M&A 이후 발생할 각종 비용을 제주항공 측에 떠넘기려는 속셈 아니냐는 비난만 일었다. 이스타항공 노조 측은 이 의원과 이수지 홀딩스 대표를 횡령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제기된 의혹들이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정현수 최지웅 안규영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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