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이응광 “감염병 속에서도 음악적 소통은 가능해요”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 첫 온라인 공연 주인공....8월 스위스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출연

바리톤 이응광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에서 국민일보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26일 코로나19 사태 속에 국내에서 처음 등장한 선보인 온라인 공연 '방구석 클래식'의 첫 주인공이다. 권현구 기자

지난 2월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국내외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을 무렵 바리톤 이응광(39)은 휴대전화 카메라 앞에 섰다. 다양한 가곡, 아리아, 찬송가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네이버 브이라이브 채널을 통해 스트리밍됐다. ‘방구석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이 미니 콘서트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온라인 공연이 됐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이응광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컸던 당시 팬들에게 작은 위안을 전하고자 하루 만에 준비한 공연이었는데, ‘위로받았다’는 팬들의 댓글이 이어졌다”면서 “감염병 속에서도 음악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떠올렸다.

2007년 국립오페라단 ‘라보엠’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 이응광은 2008~2015년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에서 동양인 최초로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과 유럽을 바쁘게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그는 당초 4월 스위스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9월 루체른 오페라극장이 새롭게 제작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기 때문이다. 루체른 오페라극장은 8월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4월에 1차 리허설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탓에 취소했다. 이응광의 경우에도 상반기 출연할 예정이었던 국내외 공연 6개가 연기 또는 취소됐다.

그런 이응광에게 그의 국내 소속사인 봄아트 프로젝트의 윤보미 대표가 온라인 공연을 제안했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노래를 들려주고 실시간 댓글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온라인 공연은 그에겐 경험한 적 없는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코로나19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 없다”고 생각해 동참했다. 그가 출연한 첫 ‘방구석 클래식’은 호평을 얻었고, 이후 참여한 음악가가 다음 음악가를 지명해 릴레이로 이어졌다.

이응광은 지난 2월 26일 네이버 브이라이브 채널을 통해 처음 스트리밍 된 온라인 공연 ‘방구석 클래식’에 출연했다. 그는 "감염병 속에서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방구석 클래식' 캡처

온라인을 통한 팬과의 소통에 새롭게 눈뜬 그는 ‘방구석 클래식’에 모두 3회 출연한데 이어 아예 3월 20일 유튜브 채널 ‘응광극장’을 시작했다. 그는 ‘응광극장’의 팬들과 함께 기부 콘서트 ‘Song for Hope’까지 개최했다. 지난달 19일 1차 콘서트가 열렸고, 다음달 7일 2차 콘서트가 열린다. 공연이 열리는 서울 신사동 오드 포트는 5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1차 콘서트는 매진됐다. 티켓수익(좌석당 5만원)은 공연에 필요한 최소 경비를 제외하고 모두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코로나19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아동에게 기부된다.

‘방구석 클래식’에서 촉발된 그의 활발한 활동은 국내 공연계의 주목을 모았다. 코로나19 탓에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 없어진 국내 공연장들이 한국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새롭게 콘서트를 기획할 때 그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는 지난 18일 롯데콘서트홀의 ‘모차르트, 다 폰테를 만나다’ 공연에 나선데 이어 이튿날 KBS 1TV ‘열린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이응광이 쉼 없이 팬들을 만나는 이유는 오페라를 포함한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그나마 젊은 편이지만 유럽에서는 클래식을 향유하는 연령대가 60~70대 이상으로 높다”며 “이젠 단순한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관객을 클래식으로 유혹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 논의가 선행될 때 클래식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힘줘 말했다.

그가 유튜브 채널 개설 등 새로운 시도에 주저하지 않는 것도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여러 방면에 먼저 도전해 클래식을 하는 후배들에게 새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답했다. “국내는 특히 클래식 시장이 크지 않아 후배들의 운신 폭이 넓지 않아요. 공연과 유튜브 외에도 클래식을 더 알리고 음악적 규모를 늘릴 수 있는 여러 구상을 하고 있어요. 클래식과 재즈, 팝 등을 버무린 곡의 편곡작업도 진행 중이고요. 훗날 이응광으로 인해 클래식 흐름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이응광(오른쪽) 지난 18일 롯데콘서트홀리 주최한 '모차르트, 다 폰테를 만나다'에 출연하고 있다.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모차르트와 다 폰테가 함께 작업한 작품들의 중요 아리아를 불렀다. 봄아트 프로젝트 제공

서울대 음대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이응광은 서정적인 목소리, 자연스런 연기, 풍부한 성량으로 젊은 시절부터 차세대 성악가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2006년에는 독일 알렉산더 지라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1위, 2008년에는 이탈리아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 성악 콩쿠르 1위, 2010년에는 스위스 에른스트 해플리거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며 기량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짜 무기는 ‘끈기’와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바젤 오페라 극장 시절 캐릭터의 철저한 분석을 위해 연출가와 토론하는가 하면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밤마다 공부를 이어갔다. 당시 그의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반한 예술감독 디트마르 슈바르츠(현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극장장)는 그가 유럽의 다른 극장에서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했을 정도다.

이응광은 “유럽 오페라극장 무대에 서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을 꼽으라면 ‘표현력’이다. 유럽 성악가들은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추임새도 자유롭게 넣는데 비해 동양 성악가들은 처음에 다소 부족하다”며서 “표현력을 갖추기 위해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오페라에서 진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응광은 다음달 2차 기부 콘서트를 마치면 곧장 스위스로 출국한다. 9월 25일 시작하는 루체른 오페라극장의 2020-2021 시즌 개막작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스위스는 코로나19 상황이 유럽에서는 좋은 편이어서 객석 거리두기를 하며 공연을 올리고 있다. 이번 작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의 첫 전막 오페라 출연이다.

“오페라 가수가 제 본업인 만큼 다시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게 설레입니다. 극장의 냄새, 동료들과의 대화가 그리웠어요. 특히 주인공 피가로 역으로 가장 그리웠던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돼 행복합니다.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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