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을 바탕으로 영상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사업 초기 영상 대여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블록버스터를 꺾은 넷플릭스는 새로운 경쟁을 앞두고 있다. 디즈니, AT&T, 애플 등이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오픈하며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업체 간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TV PD와 영화감독을 오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TV의 매력으로 “뜻밖의 만남”을 꼽은 적이 있다.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을 내고 극장으로 보러 간 작품만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 후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텔레비전 방송이 사람마다 몇 편쯤 있지 않을까요.” 그의 말대로 언제 무엇을 볼 것인지 알고 찾는 극장에 비해 TV에는 우연한 마주침이 있다. 소파에서 방송사가 내보내는 프로그램 사이를 유영하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한참을 쳐다보는 게 TV 시청의 주요 패턴이다.

영상 소비 패러다임을 바꾼 넷플릭스는 극장과 TV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 때 보고 싶은 작품을 골라 보면서 생각지 못했던 추천작도 마주친다. 이는 넷플릭스가 여타 영상 플랫폼을 압도하며 지난 20년간 시장을 재편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인사이트’는 직원 7명의 온라인 DVD 대여 업체로 출발한 스타트업이 미디어 거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드라마와 그 비기(祕技)를 방대한 국내외 자료와 함께 들여다본다.

넷플릭스는 VHS 카세트가 주류이던 1997년 렌탈 시장에 비집고 들어와 블록버스터, 월마트 같은 시장 지배자들과 맞상대하며 덩치를 키웠다. 저자는 넷플릭스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다음과 같은 네 번의 파괴적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① VHS 카세트 대신 DVD를 선택해 효율적으로 배송하는 우체국과의 협업 체계 구축 ② 온라인 미디어 비즈니스와 월정 구독료 기반의 대여 모델 도입 ③ 인터넷을 통한 2007년 스트리밍 사업 시작 ④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자체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

고비마다 네 번의 혁신을 추진 로켓으로 삼은 넷플릭스에 유통 골리앗 월마트는 옆으로 비켜섰고, 렌탈 공룡 블록버스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블록버스터는 2000년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에 자신들을 인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다 퇴짜를 맞았던 회사였다는 점에서 양자의 몰락과 성장은 더욱 극적이다.

파괴적 혁신을 뒷받침한 기술은 넷플릭스의 강력한 무기다. 막연히 인공지능(AI)의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을 것이라 생각한 추천시스템은 사실 인간과 AI의 협업이 토대가 됐다. 넷플릭스의 인간 분석전문가들은 새로운 콘텐츠가 들어오면 모두 감상한 후 1000개의 카테고리 태그와 메타데이터를 생성해 분류한다. 1000개의 카테고리 태그는 AI가 구별하기 힘든 주관적인 정보도 담는다. 훈훈한 분위기, 풍부한 상상력 같은 것들이다. 그 결과 2014년까지 비디오 콘텐츠를 7만6897개의 마이크로 장르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세분화되다 보니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감성 언더독 영화’ ‘1970년대 중국의 액션 및 모험 영화’ 같은 분류가 가능해진다.
넷플릭스는 같은 영화라도 사용자에 따라 섬네일을 달리해 주목도를 높인다. '굿 윌 헌팅'에 대한 섬네일은 이전에 '세렌디피티' 같은 영화를 선택한 사용자에게는 맷 데이먼과 미니 드라이버의 키스 섬네일을 보여주지만 '성질 죽이기' 같은 영화를 선택했던 사용자에게는 로빈 윌리엄스 섬네일을 노출한다. 21세기북스 제공

섬네일(Thumbnail)과 이미지 활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사용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넷플릭스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다. 넷플릭스는 동일한 영화여도 이전에 사용자가 어떤 영화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노출 이미지를 달리한다. 가령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보자. 로맨틱 영화 팬으로 식별된 고객에겐 출연 배우 맷 데이먼과 미니 드라이버의 키스 섬네일이 표시된다. 반면 코미디 팬으로 식별된 고객에겐 다른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의 섬네일이 노출된다. 더욱이 고객에 대한 정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만큼 같은 고객이어도 섬네일은 달라질 수 있다.

가입자 증가로 축적되는 방대한 데이터는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로도 활용된다.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 시 넷플릭스는 원작, 감독, 배우에 대한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시즌2까지 제작비 1억 달러를 통 크게 투자하기로 결정한 데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과감한 혁신과 기술로 지금까지 성장을 거듭한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릴지는 알 수 없다. 콘텐츠 부자 디즈니와 AT&T, 디바이스 강자 애플 등이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그때그때 보고 싶은 콘텐츠에 따라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결제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경쟁의 격화가 소비자에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IBM,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에서 근무한 저자의 의도대로 비즈니스와 기술의 관점에서 넷플릭스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군데군데 반복돼 짜임새 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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