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가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형의 장례식에 하얀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남자 레이(이정재). 감정 없는 말투와 서늘한 눈빛을 지닌 그는 첫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사냥감을 쫓는 맹수’인 레이가 과연 장례식에 검은 정장을 입고 올 정도로 사회화 된 캐릭터일까, 고민하던 이정재는 하얀 코트를 골랐다. 그가 표현하려한 레이의 성격을 가장 잘 담아낸 장면이면서 앞으로 레이가 얼마나 섬뜩한 일을 벌일지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다음 달 5일 개봉하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추격자 레이를 연기한 이정재를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암살’ ‘도둑들’ ‘관상’ 등 지금까지 수많은 악역을 해왔지만 이번 작품의 레이는 다른 성격의 악이다. “레이를 연구하면서 너무 많이 고민하지 않으려 했다”고 했지만 인터뷰 내내 이정재에게서는 오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레이는 잔인함의 끝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는 표정과 눈빛 등 감정연기로 악함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행동파예요. 또 다른 악역인 셈이죠. 지금까지 했던 방식대로 레이를 표현하는 건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레이의 전사가 영화에 거의 담겨있지 않아서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려면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인상을 쓰지 않고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어도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의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이다. 이정재는 복수를 위해 인남을 추격하는 레이 역을 맡았는데, 그의 섬뜩한 눈빛과 강렬한 맨몸 액션은 극을 휘어잡는다.

이정재는 레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말하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죽은 형을 바라보는 표정을 연기하기 위해서 전날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어요. 아무런 에너지 없이 감정을 모두 뺀 레이를 담고 싶었거든요. 그저 서 있을 뿐이지만 그 장면을 가장 섬뜩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레이는 연민이나 동정 같은 감정이 전혀 없는 인물인데 아무리 그래도 형의 죽음 앞에서 완벽히 의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장례식장에서 레이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표현하는 건 캐릭터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미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상태의 레이 모습이 필요했죠. 이 장면이 있어야 레이가 인남을 그토록 잔인하게 쫓는 전개가 설득력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정재는 레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소품을 연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 박명훈과 만나는 장면에 그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당시 현장을 살펴보던 이정재는 제작진에게 커피를 마시며 연기해도 되냐고 물었다. 상의 되지 않은 콘셉트였기에 준비되지 않은 소품은 배우가 직접 준비해야 했다. 감독의 허락을 얻어 그는 부랴부랴 컵과 빨대를 공수했고, 반드시 얼음을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사람을 죽이러 온 레이가 그 와중에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잔혹성을 배가시켰고 컵에서 얼음 부딪히는 소리는 이 장면의 서늘함을 고조시켰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다시 한번 황정민과 이정재가 만났다는 점은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이정재는 “인남을 어떻게 압박할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며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무게감이 상당해서 그의 아우라를 누를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완성본을 보니 영화 곳곳에 인남의 위기가 보이더라고요. 그만큼 내가 잘 조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웃음)”

다만 그래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이정재는 “이번 영화는 ‘신세계’와 완전히 다르다”라며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해보지 않았던 역할’ 혹은 ‘해보지 않았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우가 똑같은 작품에서 똑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의 강점은 역시 액션이다. 스톱모션 기법을 도입해 스타일리쉬한 추격액션신을 완성했는데 리얼한 타격감을 연출해 날 것 그대로의 액션신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는 편집을 활용해 액션신을 선보였지만 스톱모션 기법은 배우들이 실제로 서로 타격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매섭고 거친 몰입감을 선사한다.

“액션에 가장 공을 들였어요. 레이는 몸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인물이라 액션이 더 중요했죠. 주먹을 뻗는 각도나 속도 하나하나 연습했어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안 되는 건 바로바로 포기하고 다른 동작을 맞췄죠(웃음). 액션팀과 ‘레이는 이 정도까지는 잔인해도 될 것 같다’라든지 ‘레이라면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다’ 식의 의견 교환을 많이 했어요. 액션 장면이 정교하게 표현된 것 같아 만족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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