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폭우’ 느는데… 낡은 방재시설만 믿다가 또 당했다


지난달 말부터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집중호우의 빈도와 양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현재 대다수 하수도 시설이 과거 기준으로 설치돼 늘어난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수 시설을 보완·확충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미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상청은 지난달 28일 발간한 ‘2020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지난 106년(1912~2017년) 동안 연평균 강수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 강수량은 10년에 11.6㎜씩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여름철 집중호우(1일 80㎜ 이상 강수) 강수량도 10년에 7.54㎜, 일수는 0.07일씩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설치돼 있는 하수도 시설은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2일 “전국 배수시설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것을 아직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빗물 처리 용량이 20~30㎜에 불과한 것도 많다”고 설명했다.

2일 홍수경보가 내려진 경기 여주시 청미천 원부교 지점 부근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린 이날 경기도 안성 일죽면에서는 시간당 102.5㎜(오전 8시), 충북 충주에는 시간당 74.5㎜(오전 6시)의 강수를 기록했다. 지난달 23일 부산 초량동 제1지하차도 침수 사고 역시 배수펌프 등 방재시설이 있었지만 관측 이래 9번째로 많은 양의 시간당 강수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빗물저류시설 등 보완책이 도입되고 있지만 도심에는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조 교수는 “전날 폭우로 침수된 상습침수지역인 서울 강남역은 땅값이 비싸 저류시설을 건설할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와 지방 간 방재 역량 차이로 지방이 더 재해에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날 붕괴된 경기도 이천 산양저수지에 대해 김현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국 1만8000여개 저수지 중 약 1만5000개 읍면 단위의 작은 저수지들은 설계기술이 부족한 시기에 만들어져 재해에 취약하다”며 “시설을 강화해야 하지만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지방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산사태 등 집중호우로 인한 부차적인 사태가 방재 설계에서 간과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대전 코스모스아파트 침수는 빗물뿐 아니라 산사태로 떠내려온 흙이 배수로를 막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설계단계에서 지형 영향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배수시설의 확충과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호 부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하수도 규격을 확대하고 부족한 빗물저류시설 등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새로 만드는 저류시설은 서울의 경우 시간당 95㎜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서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지자체들이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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