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백신의 3가지 위기… 정치적 압박·지나친 기대·공정한 배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르면 연내 백신이 개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19 위기는 드디어 끝나는 것일까?
미국 언론들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개발이 내포한 위기 요인들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백신이 개발 즉시 구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백신에 대한 맹신이 마스크 쓰기 등 코로나19 예방 조치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 배분이나 접종 순위를 둘러싸고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백신은 연내에 개발될 것"이라고 공언하며 이를 위한 초고속 개발팀을 본격 가동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 논리가 이끄는 ‘백신 개발 속도전’
과학계를 중심으로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전’을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한 빠른 백신 개발 및 배포를 목표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펼치고 있다. 백신을 팬데믹 위기를 반전시킬 유일한 희망으로 간주하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초고속 작전에 참여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백신 개발 과정에 가해지는 트럼프 행정부 등의 정치적 압박이 안정성이 결여된 백신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한 ‘10월의 서프라이즈’는 백신이며, 과학자들은 11월 대선 전까지 트럼프에게 코로나19 백신이라는 선물을 안겨야만 한다는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부 안팎의 전문가들은 백악관이 식품의약국(FDA)을 압박해 11월 대선 전 (효과나 안전성을 입증할) 자료가 충분치 않은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폴 A. 오핏 의학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초고속 작전의 유망 백신 중 1, 2개를 몇천 명에게 실험해 봤더니 안전해 보였다. 이제 그것을 출시하겠다’고 할까봐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백신은 구원이 아니다… 지나친 기대는 독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자마자 세상이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우려도 많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코로나 백신이 곧바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믿음”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부풀린 백신에 대한 환상은 오히려 단기간에 전염을 막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역정책들에 대한 신뢰를 낮추며 격렬한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몇 개월만 더 버티면 백신이 나와 팬데믹이 끝나고 마스크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신의 힘을 믿는 전문가들조차 먼 길을 예고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은 모든 것을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리는 ‘리셋 버튼’일 수 없으며, 백신 개발 완료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당장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배포하는 것은 공급·유통망부터 국제 협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일이다. 전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 만큼 충분한 이들에게 백신이 돌아가려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의미다. 백신 접종으로 만들어진 면역력의 지속성이 짧거나 극히 부분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경우 1955년 효험도 있고 안전한 백신이 나왔고, 발명자인 조나스 솔크는 국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소아마비가 미국 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 후로 24년 뒤인 1979년이었다.

한 여성이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의 한 국립 보건시설에서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와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발적으로 참가해 백신 후보군 약물을 주사로 맞고 있다. AP뉴시스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나… 윤리적 딜레마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도 떠오르고 있다. AP통신은 이날 “누가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보건당국은 다음달 말까지 최초의 백신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접종 순위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며 백신 배분 문제와 관련해 자문 그룹에 조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는 의료 종사자와 해당 질병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다. 다만 콜린스 원장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해서는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도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설령 연말까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할지라도 당장 사용하기에 충분한 수백만회 분량을 비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백신 수혜자에 대한 정의와 기준 등을 두고 윤리적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백신의 배분은 전 지구적 차원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가난한 국가들에도 코로나19 백신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 ‘백신 우선권’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부자 나라들이 먼저 나서서 백신을 사재기할 경우 WHO의 딜레마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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