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연예·스포츠 > 스포츠

손흥민 응원가 발매한 68세 택시운전사 “英 현지에서 불리는게 꿈이죠”

전 美 8군 밴드 출신…황혼에 기타 잡고 ‘싱어송라이터’ 꿈에 도전

택시기사 김창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택시 안에서 손흥민 응원곡 'Fighting Son'을 노래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Hey hey fighting Son, bring us victory~.”

택시기사 김창남(68)씨는 지난해 12월 축구 스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응원가 ‘Fighting Son’을 발표했다. ‘재규어처럼 빠른 널 누구도 막지 못하지’ 같은 강렬한 가사엔 컨트리 송의 정겨운 멜로디가 입혀져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 주황색 법인택시를 끌고 나타난 김씨는 이 곡의 작곡 계기로 2019-2020 시즌 번리전에서 선보인 손흥민의 ‘70m 드리블 골’을 떠올렸다. “정말 대단한 골이었지. 하루종일 손님들이랑 그 얘기만 했어요. 수도 없이 골 장면을 돌려봤지.”

골이 터진 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엔 공식 응원가인 ‘Nice one Sonny’가 울려 퍼졌다. 단조로운 가사가 반복되는 이 곡은 사실 구호에 가까웠고, 김씨는 응원가 다운 응원가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 노래는 3~40년 전의 한 선수 응원가를 이름만 바꾼 거더라고. 한국인이 영어 응원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지.” 김씨는 그렇게 ‘Fighting Son’과 손흥민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후속곡 ‘Just a playing ball boy’를 연이어 발매했다.

지난해 12월 7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번리전에서 원더골을 성공시키고 세리머니하는 손흥민의 모습. PA뉴시스

꿈과 좌절, 음악과 유럽축구
김씨가 음악을 시작한 건 1968년. 친구 따라 기타 연습에 몰두한 그는 곧 서울 불광동의 ‘기타 잘 치는 고교생’으로 소문났다. 가수 서수남은 그런 그를 미8군 기획사에 소개해줬다고 한다. 김씨는 곧 ‘김치 카우보이즈’란 밴드 소속으로 전국 미군부대를 유랑하는 가수가 됐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지만 음악으로 살아가긴 녹록치 않았다. 현실과 타협한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관광산업 붐을 따라 영국 무용단을 한국 클럽에 초청하는 일을 하게 됐다. 2003년부터는 아예 회사를 따로 차려 동유럽 밴드 초청 사업을 했다. 하지만 채 3년을 버티지 못했고, 빚쟁이가 된 그의 집엔 빨간색 압류 딱지가 붙었다.

도망치듯 떠나 경북 구미에 다다른 김씨는 한 대형 식당에 주방장 보조로 취직해 잡초를 뽑고 숯불을 피우며 굳은 일을 도맡아 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선 빚을 갚아야 했고,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위태로운 객지 생활, 그를 위로했던 건 매주 새벽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던 박지성의 활약이었다. 김씨는 “홀대받던 박지성이 영국에서 환호 받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냈다”고 했다.

2008년 김씨는 택시기사가 됐다. 은퇴할 나이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매일 새벽부터 꼬박 엑셀레이터를 밟아 5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고, 2015년엔 아들을 결혼시키고 딸을 지방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무료함이 찾아왔다. “집이 빈 것 같아 공허했어요. 인생이 허무했지.”

택시기사 김창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택시 안에서 손흥민 응원곡 'Fighting Son'을 노래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황혼의 도전, 英에 응원가 울려 퍼질 때까지
권태롭게 택시 운전을 하던 어느 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틀어준 브람스의 3번 교향곡이 김씨의 귓가를 때렸다.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하는 데 6년 걸렸다”는 진행자의 설명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고 한다. “젊을 때 쉽게 작곡을 포기한 게 맘에 걸렸어요. 30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게 됐지.”

2017년부터 김씨는 아예 반주, 노래, 코러스까지 모두 하기로 마음먹었다. 곡이 팔리지 않아 고민하자 음반유통업에 종사하던 한 손님이 “디지털 싱글은 쉽게 발매할 수 있다”고 조언한 것. 김씨는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 작곡·작사를 한 뒤 새벽 6시부터 12시간 동안 운전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같은 해 9월 첫 디지털 싱글 ‘Lazofe, dear my friend’를 발매한 이후 2년여 동안 총 8곡을 발표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택시 일은 어느덧 가수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김씨는 손님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눈다. 손님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었고, 김씨는 이를 작곡·작사에 반영했다. 손님들이 김씨의 가장 열렬한 팬이 되기도 했다. 유명 사진작가 성남훈씨는 김씨의 택시에 탔다가 앨범 자켓에 쓸 풍경사진을 제공해줬고, 컴퓨터용품점을 운영하는 한 승객은 김씨에게 음반 선물을 받고는 공 CD 한 박스를 선물해줬다.

손흥민 응원가를 발매한 택시기사 김창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자신의 택시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김씨가 다니는 신도 10명의 개척교회에선 목사가 지원군이 됐다. 김씨가 자신의 곡을 홍보하기 위해 ‘무비 메이커’를 독학으로 배우며 이름도 생소했던 유튜브에 곡을 올리기 시작하자 목사는 김씨가 노래하는 동영상을 찍어줬다. 김씨의 유튜브 채널은 아직 구독자가 35명에 불과하지만, 음악 스트리밍 앱 멜론에선 조금씩 반응이 생기고 있다. 지난 1월 멜론에 등록된 ‘Fighting Son’은 1~3월 총 1423회 다운로드 됐고, ‘Just a playing ball boy’도 2월부터 두 달 간 947회 다운로드 됐다고 한다.

박지성에 이어 손흥민의 활약을 보며 힘을 얻는다는 김씨의 꿈은 ‘Fighting Son’이 EPL에 진출해 영국 현지에 울려 퍼지는 것. 이를 위해 김씨는 손흥민을 다룬 두 곡을 모두 영어로 작사했고, 자신의 활동명도 ‘CN KIM’으로 삼았다. “영국 사람들이 ‘Fighting Son’을 부르는 걸 매일 상상해. 장기적으로는 꼭 명곡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뒤늦은 나이에도 도전할 수 있단 메시지를 주고 싶어.”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