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청계천 빈민의 성자(28): ‘미망인’ 어머니

우상과 맞선 한 성자의 눈물: 한국 교회는 왜 권력이 됐는가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기독교 선교 활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민을 선동해 천황이 다스리는 국가에 불온사상을 퍼뜨리지 않을까 하고 감시했다. 1945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과 우방이 아니었으므로 일본 내 미 선교사의 행동은 감시 대상이었다.
신학자 서남동 박사

어머니 동창 가운데는 한국의 유명한 민중신학자 서남동(1918~1984) 박사가 있다. 한국기독교 장로회 교단 학교인 한신대와 기독교 미션 스쿨 연세대 신학과 교수를 역임한 분이다.

전남 신안 출신으로 역시 미션스쿨인 전북 전주 신흥중학교를 나왔다. 그는 1960년대 이후 본회퍼의 ‘세속화 신학’, 볼트만의 해석학적 신학, 테야르드샤르댕의 과정 신학,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등 서구 진보주의 신학 사조를 한국에 소개하며 독자적인 신학 체계를 완성해 갔는데 그것이 바로 ‘민중신학’이다. 하나님의 정의로 사회참여와 반독재 투쟁을 계속했던 분이다.

서 박사는 1970년대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 등을 주도했다. 연대 교수에서 해임이 따랐으나 신앙과 학문의 자유를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그 고난의 시절 몇 차례 우리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 박사는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을 배출한 대학에서 어머니 등을 만나 공부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1940년 무렵 두 분은 졸업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도쿄로, 서 박사는 조선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도쿄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군국주의식 나라 운영이라 이동제한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정의와 지식을 실천해야 한다며 도쿄행을 택한 것이다. ‘미망인’으로, 봉건적 사고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참으로 용감했다. 신앙과 배움이 바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도쿄에서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가 이끄는 노동자 운동과 소비자조합운동에 참여했다. 가가와 목사는 아버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끊임없는 사랑이 일정 부분 그런 형태로 표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가와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절 한국을 방문,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한국 침략에 사죄한 불굴의 예수 제자였다. 그의 이러한 기록은 자전 소설 ‘사선을 넘어서’(1921), ‘새벽이 오기 전에’(1924)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의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은 그 당시로선 위험하기 그지없는 반정부적 일이었다. 전시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일본인이 군수공장 등에서 집단노동을 하는 시점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좌익으로 몰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였다. 마치 내가 경험한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와 같았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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