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폭발, 충격서 분노로… 누가? 왜? 질산암모늄 방치했나

“정치인들의 무능과 태만이 참사 불렀다”

레바논 베이루트 시민들이 대폭발 사고가 난 베이루트항 인근을 6일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6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한 건물의 부서진 발코니엔 “누구의 머리가 매달리게 될까?”라는 문구와 함께 올가미가 걸려있었다. SNS엔 “교수형에 처하라”라는 해시태그가 퍼져나가고 있다. 전날,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질산암모늄이 당국의 관리 소홀로 항구에 수년간 방치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경제난과 고질적인 부정부패에 코로나19 위기까지 더해져 휘청이던 레바논은 베이루트항 대폭발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들은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가 정치인들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삶의 터전이 한 순간에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가운데 시민들은 부서지지 않은 것을 찾기 위해 폐허 속을 걸어다녔다”면서 “많은 이들이 폭발 참사를 수년간 쌓인 정치인들의 무능력과 태만이 절정을 이룬 사건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자영업자 나다 케말리는 이번 폭발로 자신이 운영하던 주방용품 상점과 집을 모두 잃었다. 케말리는 레바논을 망친 권력자들을 비난하면서 “그들 중 누가 피해를 보상해주고, 우리를 도울 것이냐. 모두 물러나 집으로 가라”고 외쳤다. 그녀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금융 위기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레바논 시중 은행들은 현금 인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폭발로 집이 망가진 로저 마타르는 “우리의 돈을 모두 은행이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가 우리를 도와줘야 하는데 정부는 파산 상태다. 나라는 망가졌다”고 절망했다.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는 5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30만명이 살 곳을 잃게 만들었다. 실종자도 수십명이다. 창고에 쌓여있는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지난 6년 간 관리들이 무시하지 않았다면 폭발은 사전에 막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6개월 전에도 베이루트항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은 방치된 질산암모늄을 옮기지 않으면 베이루트 전체가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대는 이날 참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온 사드 하리리 전 총리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가디언은 “레바논은 이미 금융 위기를 겪고 있으며, 국민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정부는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베이루트 항구 직원들을 가택 연금했다. 폭발 위험이 있는 위험한 물질 수천t이 어떻게 시민들의 거주 구역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방치돼 있었는지 묻겠다는 것이다.

NYT는 세관 공무원들이 2014∼2017년 사이 최소 6차례 법원에 편지를 보내 “창고에 쌓여있는 질산암모늄 처분 지침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당시 공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4일(현지시간) 발생한 폭발 사고로 초토화된 레바논 베이루트항 인근을 위성촬영한 모습. AFP 연합뉴스

외신들은 질산암모늄을 싣고 2013년 11월 베이루트항에 입항한 화물선의 선주로 이고르 그레슈슈킨이라는 러시아 사업가를 지목했다. 몰도바 국적의 이 화물선은 조지아를 출발해 모잠비크로 가던 중 항로를 우회해 베이루트로 입항했다.

당시 배를 몰던 선장은 당시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주가 수에즈 운하 통행료를 내줄 수 없다고 해 추가 화물을 실어보려고 베이루트에 입항했다”면서 “그러나 선주가 항구 이용료를 내지 못했고, 레바논 당국자들이 화물선을 몰수했다”고 말했다. 화물선에 실려있던 질산암모늄 2750t이 2014년부터 베이루트항 창고에 있게 된 경위다.

배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선원들은 레바논 당국으로부터 풀려날 때까지 1년 가까이 배 안에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이 질산암모늄의 폭발을 촉발했는지는 여전히 명확치 않다. 질산암모늄이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고온이 가해져야 한다. 마완 아부드 베이루트 주지사는 “처음 화재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폭발 이후 실종 상태”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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