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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한인 선교사 “폭발로 레바논 녹아웃…속히 안정되게 기도 부탁드린다”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폐허가 된 주변 건물. 정바울 선교사 제공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단순한 폭탄 테러 같은 느낌을 넘어서 미사일 폭격 같은 느낌이었다.”

2011년부터 레바논에서 난민 사역을 하고 있는 정바울 선교사는 지난 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그는 사고 지점에서 25㎞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충격파를 고스란히 느꼈다고 했다. 정 선교사는 “건물이 출렁거렸고, 주변에 있는 건물들 유리창이 파손됐다”며 “현지 친구들도 히로시마 원자탄 이후 가장 큰 폭발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사고 다음 날 곧바로 사고 현장 인근으로 달려갔다. 협력하던 인근 교회를 방문했는데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 선교사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사고 현장 가까이는 가지 못했지만 사고 현장에서 10㎞ 반경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교회도 많이 있는데 외벽에 금이 가거나 실내 천장이 무너진 곳도 많았다. 램프나 유리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 선교사는 “그곳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니 피해 입은 현지인들의 도움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인근 교회에 걸려있던 교회 십자가가 떨어졌다. 정바울 선교사 제공

현재 레바논은 2주간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다. 무장 군인들이 배치됐고, 사고 지역 인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 선교사는 폭발 사고 후유증도 심각하지만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라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레바논에 경제 위기가 닥쳤다. 국민들 삶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며 “1달러에 1500리라 정도였는데 지금은 8000리라로 뛰었다. 리라 가치가 폭락했다. 물가도 2~3배 상승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닥쳤고, 여기에 폭발 원인이 항구 창고에 보관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으로 추정되면서 국가적 대응에 대한 불만이 치솟고 있다”며 “이런 누적된 불만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시위 등으로 연결이 되면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고 덧붙였다.

실제 폭발 참사에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고 있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폭발 피해가 심각한 제마이제 지역을 방문했을 때 잔해 수습 작업을 하던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한 수백여 명이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주먹을 치켜들고 ‘혁명’이란 구호를 외치며 “국민은 정부의 퇴진을 원한다”고 외쳤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파손된 교회 건물 파편. 정바울 선교사 제공

정 선교사는 “레바논이 속히 안정되는 게 중요하다”며 “레바논 젊은이들이 나라에 대한 회의감이 커 모두 떠나려고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등 주변국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부상자 치료를 위한 병상 확보와 의약품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며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더 힘든 상황이다. 어제도 확진자만 300명 넘게 나왔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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