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오시니 서둘러 보고’…‘방문통보’ 했을뿐.

총리실, 호우피해 집계 요구에 일선 공무원들 불만 제기


‘국무총리 오시니 호우피해액 서둘러 산출·보고하라!’

8일 오후 6시20분쯤 광주시 일선 자치구 공무원들에게는 ‘이용섭 광주시장 긴급 지시사항’이 문자메시지 형태로 일제히 전달됐다.

전산 업무연락을 통해 하달된 내용은 9일로 예정된 정세균 국무총리의 광주 현장방문에 대비해 서둘러 호우피해를 집계해 보고한 뒤 퇴근하라는 것이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위해 반드시 피해현황 파악이 필요하고 국무총리 광주 현장보고 때 피해액이 구체적으로 보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긴급 지시에 대해 문자발송을 담당한 공무원은 “불가능하다고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는 하소연을 덧붙였다.

전 직원 비상령에 따라 휴일에도 근무 중이던 일선 공무원들은 “당일 호우피해 상황을 어떻게 몇 시간 만에 집계하라는 것이냐”며 “엉터리 집계를 하라는 말이냐“고 반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국무총리실과 광주시는 대략적인 호우피해 조사와 피해액 집계를 거듭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일선 공무원들은 “총리의 현장방문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쥐어짜내기식 피해집계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적 여론이 지배적이다.

총리 현장방문 일정에만 맞춰 주먹구구식으로 호우피해를 형식적으로 집계하는 것은 ‘권위주의 행정’이라는 것이다.

정 총리가 지난 6일 춘천의암댐 선박침몰 사고현장에서 춘천시 공무원들을 이례적으로 질책한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5명의 공무원이 사망·실종된 춘천의암댐 선박침몰 사고는 ‘윗선’을 의식한 ‘인재’라는 정황이 뚜렷한데 정 총리가 춘천시 간부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더구나 춘천시가 당시 “규모가 작은 행정선에 공무원들이 많이 탄 것 같다”고 형식적으로 보고해 사고책임을 사망·실종자들에게 덮어씌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사고 직전 현장을 향해 가던 춘천시 한 주무관의 승용차 블랙박스에는 “미치겠다. 징계 먹겠다”는 음성과 울먹이는 소리가 담긴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상급자 지시를 받고 휴가 도중에 어쩔 수 없이 인공수초섬 고정작업을 진행했다는 방증이다.

이를 두고 광주시 공무원들은 “지시가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지만 합리적 판단이 아쉽다”며 “춘천의암호 전복사고나 쥐어짜내기식 호우피해 집계나 맥락이 다를 게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작 정 총리는 부리나케 호우피해 집계에 나선 광주에는 잠시 들른 뒤 전남 곡성 산사태 현장을 9일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는 광주 죽봉대로(농성동) 영산강 홍수통제소에 잠시 머문 뒤 지난 7일 밤 흙더미가 쏟아져 주택을 덮치는 바람에 5명이 숨진 곡성 성덕마을로 향했다.

광주시 공무원들은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500㎜ 물폭탄이 쏟아진 광주·전남지역에서는 곡성 산사태 사망자 5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9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정 총리는 호우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취소하고 피해현장을 잇따라 방문하는 중이다. 집중호우에 따른 선박침몰과 산사태, 제방붕괴 등이 잇따르자 날마다 현장방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0일로 예정된 휴가를 취소한 정 총리는 지난 2~3일 서울 한각홍수통제소, 경기 이천 피해지역, 5일 충북 충주, 6일 선박침몰 현장인 춘천의암댐, 8일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충남 아산시 일대 피해복구 현장을 방문했다.

정 총리는 춘천의암댐 사고현장에서 “안타깝고 부끄러워 낯을 못 들겠다. 인공수초섬을 떠내려가게 둬야지 판단을 잘못한 것 아니냐. 너무 기가 막힌다”고 공무원들을 이례적으로 공개 질책한 바 있다.

국무총리실 조윤재 소통총괄비서관은 이날 “광주시에 피해집계 총리의 방문일정을 통보했으나 호우피해 보고를 준비하라고 요청한 적은 결코 없다”고 해명했다.

광주시 대변인실 유만근 사무관은 “특별재난지역 선포과 개략적 호우피해 산정을 위해 자치구에 피해보고를 요청했으나 총리 의전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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