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잠든 여친촬영’ 유죄 반전…1·2심은 “평소 사진많아 무죄”

‘묵시적 동의’ 여부 쟁점…대법 “동의 있었다고 보기 힘들어”


“평소 명시적·묵시적 동의하에 많은 촬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심 법원이 잠든 연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한 남성의 ‘불법 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 중 하나다. 하급심 법원은 신체를 촬영하기 전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피고인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고소인의 신체를 의사에 반해 촬영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7년 8월~2018년 7월 6차례에 걸쳐 연인 관계에 있던 B씨가 잠들었을 때 나체 사진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8년 8월 B씨를 주먹과 발로 때려 상해를 입힌 뒤 “그거 가지고 안 죽는다”며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고 감금한 혐의도 받았다. A씨의 상해·감금 혐의는 1·2심에서 모두 유죄로 판단돼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남은 불법촬영 혐의를 놓고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갈렸다. 핵심 쟁점은 A씨가 B씨의 사진을 찍을 때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은 A씨가 B씨에게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맞는다고 봤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나온 것을 근거로 평소 사진 촬영에 대한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봤다. 잠들었을 때의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볼 이유는 없다는 취지였다. 1심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단도 동일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B씨가 언제든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에 대한 원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잠든 상태에서 나체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대법원은 B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영상을 지우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 “자다가도 찰칵 소리가 들려 일어난 적이 수없이 많았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신체 촬영 행위에 대해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유포 목적 없이 단순 호기심으로 촬영한 것”이라는 A씨 항변에 대해서도 범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며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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