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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각을 캐치하라”… 샌드박스 아카데미의 ‘빡센’ 하루

[LCK의 요람, 아카데미를 가다]

한국 e스포츠의 경쟁력은 인재에 있습니다. 국내 LoL 프로대회(LCK)의 경쟁력이 하락세인 것과 별개로 한국 선수들은 중국, 유럽, 북미 등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유망주의 산실’입니다. 아카데미는 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하고 재능있는 선수를 선점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입니다. 라이엇 게임즈가 LCK 프랜차이즈 도입에 맞춰 육성군 운영을 필수로 요구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국민일보는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을 취재하는 [LCK의 요람, 아카데미를 가다]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점심 식사 중인 샌드박스 아카데미 선수단.

샌드박스 게이밍 아카데미의 하루는 정오에 시작한다. 기상 후 1시간 동안은 그날 일과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세수하고 식탁에 앉는다. 보통 사람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에 이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 이날 메뉴는 부대찌개와 달걀 프라이다. 이른 식사를 거북해하는 선수들은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랜다.
샌드박스 아카데미 선수들의 기상 직후 침실 모습.

샌드박스 아카데미는 오피스텔 두 개 층을 사용 중이다. 선수단 규모 확장과 이에 따른 복지 향상을 위해 과거 다른 프로게임단이 사용하던 층을 추가로 임대했다. 한 층은 선수단 숙소로만 활용하고, 다른 한 층은 일부 선수들의 숙소 및 연습실로 쓰고 있다.
‘킹콩’ 변정현은 지난해 11월 샌드박스 아카데미 테스트를 봤고, 올해 2월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원거리 딜러인 그는 “3년 안에 모두 자신의 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샌드박스 아카데미에는 7명의 선수가 속해있다. 애초 10인 로스터를 운영했지만 최근 일부 선수들이 팀을 나갔다. 지금은 탑라이너 ‘하울링’ 전호빈(18), 정글러 ‘금고’ 김승호(20), 미드라이너 ‘톨란드’ 서상원(20), ‘크루저’ 정예찬(18), 원거리 딜러 ‘아이스’ 윤상훈(18), ‘킹콩’ 변정현(18), 서포터 ‘무루’ 이성조(19, 이상 한국식 나이 기준)가 1군 데뷔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두티’ 최두성 코치가 선수들의 스크림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을 지도하는 건 ‘두티’ 최두성 코치와 ‘노바’ 박찬호 코치, ‘판다’ 김기웅 스카우트다.

대부분의 프로게임단 스케줄은 비슷하다. 오후 동안 진행하는 ‘오후 스크림’과 저녁 식사 후 진행하는 ‘저녁 스크림’으로 팀 게임 숙련도를 높인다. 새벽엔 솔로 랭크를 해 개인 기량을 끌어 올린다. 샌드박스 아카데미 역시 이런 일과를 소화한다.

오후 1시가 되자 선수들이 연습실 컴퓨터 앞에 착석한다. 이날의 오후 스크림 상대는 또 다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소속 아카데미 팀이다. 밴픽은 게임 클라이언트가 아닌 별도의 사이트에서 천천히 진행한다. 시간 제한에 쫓기지 않고 최적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다.
스크림 도중 ‘노바’ 박찬호 코치가 선수들과 밴픽을 의논하고 있다.

선수들이 스크림을 하는 동안 코치들은 리플레이를 돌려본다. 박 코치는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아쉬웠던 점, 고칠 점을 찾아낸다. 그는 최근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다 지난 7월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는 이 팀의 전략 코치로서 유망주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박 코치는 ‘3초 각’을 중시한다. 상대보다 3초 먼저 움직여야 대형 오브젝트 등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날은 선수들이 20분 전에 상대 미드 억제기를 밀어놓고도 좀처럼 운영에 탄력을 붙이지 못했던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게임 템포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규모 교전 상황에서는 특정 선수의 아쉬운 위치선정과 스킬 활용에 대해 피드백했다. 바텀 듀오가 2레벨 때 대치 구도에서 먼저 싸움을 걸었다가 손해를 본 장면에 대해선 “챔피언 상성과 라인 상황을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며 감정적인 플레이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바’ 박찬호 코치의 현역 시절 모습.

서포터 출신인 박 코치는 이론에 강하다. 현역 시절에도 ‘콜이 장점인 선수’로 평가받았고, 그 덕에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는 APK 프린스(現 설해원 프린스)와 진에어 그린윙스, 서라벌 게이밍에서 활동했는데 ‘루트’ 문검수와 ‘테디’ 박진성, ‘상윤’ 권상윤이 그의 파트너였다.

최 코치는 선수단 멘탈 케어와 일정 수립, 선수 물색 등의 업무를 두루 맡고 있다. 그는 샌드박스의 전신인 팀 배틀코믹스에서 원거리 딜러로 활동했다. 현재는 같은 팀 1군 코치인 ‘조커’ 조재읍과 바텀 듀오로 호흡을 맞췄다. 은퇴 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다가 약 1년 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중국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김 스카우트도 1년 전 샌드박스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그는 ESC 에버에서 ‘로컨’ 이동욱과 ‘키’ 김한기 바텀 듀오를 발굴해냈다. 최근에는 상위 티어 솔로 랭크에서 유망주를 물색하고 있다. 곧 다가올 스토브리그 시기에는 1군 팀의 선수단 리빌딩 작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선수들은 오후 스크림이 끝나는 오후 4시경부터 저녁 식사 시간을 갖는다. 점심 식사와 달리 거르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더 푸짐한 상이 차려진다. 이날은 LA 갈비와 양념게장 등이 식탁 위에 올랐다.
코치진이 프론트 직원들과 주간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두티’ 최두성 코치, ‘노바’ 박찬호 코치, ‘판다’ 김기웅 스카우트.

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저녁 스크림이 시작하는 오후 7시까지 휴식을 취하거나, 솔로 랭크 게임을 하며 손끝 감각을 유지한다. 코치진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마다 프론트 직원들과 회의 시간을 갖는다. 미팅 내용은 정보 보고, 건의 사항 등이 주를 이룬다.

샌드박스 아카데미팀의 정글러 ‘금고’ 김승호.

코치진이 머리를 맞대는 동안 선수들은 저녁 스크림을 준비한다. 오후에 대결했던 팀과 다시 대결이 예정돼있다. 이번엔 오후 스크림에서 제외됐던 ‘크루저’ 정예찬과 ‘아이스’ 윤상훈이 헤드셋을 쓰고, ‘톨란드’ 서상원과 ‘킹콩’ 변정현이 솔로 랭크를 돌린다. 스크림은 3판이 기본이다. 보통 오후 10시 전후로 끝난다.
왼쪽부터 샌드박스 아카데미 미드라이너 ‘크루저’ 정예찬, 원거리 딜러 ‘킹콩’ 변정현, 서포터 ‘무루’ 이성조. 세 선수는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이 최종 목표”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저녁 스크림이 끝나면 선수들은 기나긴 새벽을 준비한다. 우선 야식을 먹는다. 이들에겐 저녁 식사나 마찬가지다. 이후 잠시 바람을 쐬며 휴식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새벽 4시까지 솔로 랭크 게임을 하면서 개인 기량을 끌어올린다. 원래는 새벽 2시 반쯤 일과를 마쳤지만, 선수단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최근 퇴근 시간을 늦췄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라 이런 스케줄이 ‘빡셀’ 수는 있어요. 그런데 LCK는 더 빡세요. 저는 ‘데프트’ 김혁규 선수가 새벽 6시까지 솔로 랭크 연습하는 것도 봤습니다. 최고의 선수들도 이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데, 비슷하게도 아니고 더 적게 연습하면 언제 그들을 따라잡겠어요. 구시대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게 현실이고, 이래야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박 코치의 말이다.

동이 틀 때쯤이 되면 LCK 아레나에서 빛날 날을 고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먹고, 자고, 게임하고(Eat, Sleep, Game). 미래의 스타들이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이 세 가지를 단순 반복하며 조용히 자신을 연마하고 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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