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모두 6278명(잠정치)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동기(6431명)와 비슷한 수치다. 하지만 추이를 분석하던 자살예방기관 관계자들은 이상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며 잔뜩 긴장 중이다. 수도권 2030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자살 관련 데이터가 악화하고 있고, 전년 동기 대비 줄고 있던 전체 자살률마저 최근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잠정 수치인 데다 분석 초기 상황이라 확언하긴 어렵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첫해 여성에 좀 더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한계 상황에 도달한 자살 위기 계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염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유대감이 작동해 자살률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고, 사건이 어느 정도 지난 뒤 증가세를 보인다고 한다. 2003년 사스(SARS) 때 그랬다. 이른바 ‘지연된 자살’ 효과다. 그런데 이 같은 자살의 지연 기간이 단축되고 있는 것 같다는 걱정이 흘러나오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 시도자 상황은 이 같은 어두운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소득분위 하위계층인 경제 취약층에서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온 사례가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보고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불안한 징후는 다른 곳곳에서도 포착됐다. 8일 국민일보 취재결과 자살 예방 상담 기관들의 상담 접수 건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 전화가 포화상태여서 연결되지 못한 건수가 통화 건수의 2배를 넘길 정도다. 상담기관 관계자들은 대상자들이 극도의 절망감을 표출하는 빈도가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토로했다.

반면 ‘언택트’가 일상이 되면서 자조 모임 등 대면 중심의 기존 안전망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상당 부분 약해진 상황이다. 자살이 급증하기 전 새로운 형태의 사회안전망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도 여성 자살이 크게 늘고 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백 센터장은 지난 8월 중순 일본 자살예방기관의 한 전문가로부터 이 같은 연락을 받았다.

‘7월 자살 사망자 1795명.’ 일본의 올해 자살사망자 숫자는 예사롭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6월 일본 자살사망자는 월평균 1585명 수준이었는데 지난 7월 210명이 급증했다. 자살 증감률을 보면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전년 동기 대비 올해 일본의 자살 증감률은 3월 -6.2%, 4월 -18.0%, 5월 -15.6%였다. 그런데 지난 7월에는 0.1% 상승 반전했다. 특히 여성 자살의 증가세가 뚜렷했다. 일본의 경우 여성 자살 건수는 지난 4월 439건, 5월 492건 6월 501건에서 7월 645건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7월(563건)보다 14.6% 늘었다. 여성 자살의 증가가 전체 자살 증가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일본 측이 의견을 구한 건 한국에서 비슷한 현상이 먼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6월 한국의 여성 자살은 1796건 발생했는데 올해 같은 기간에는 1924건으로 7.1% 늘었다. 코로나19 1차 확산 직후인 지난 3, 4월에는 각각 전년 대비 17.3%, 17.9% 늘었고, 지난 6월에도 13.6% 증가했다.
여성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 자살이 증가추세라는 것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난달 자살률 긴급점검에 나선 세계보건기구(WHO)에 이 같은 상황을 전달했다.

한국에서 여성의 자살은 지난해 말 연이어 터진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사건 이후 급증했는데, 문제는 이 수치가 올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코로나19는 전국적 상황으로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첫해 여성 자살이 먼저 증가하는 것 아닌가 하고 저희는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WHO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아직 원인을 언급하긴 성급하지만 여성 자살이 늘어나는 전반적 통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자살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비율은 늘고 있어서 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백 센터장은 조심스럽게 2가지 원인을 추정했다. 사회적 관계망이 약화된 현실에서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직업군에 속한 여성들의 어려움이 가중됐을 가능성, 자녀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못 가는 상황이 돼 육아 부담 등이 높아진 여성들의 갈등 문제가 증가했을 가능성 등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지지의 단절, 경기 악화에 따른 실직 충격 여파가 자살 위기군에 있던 여성을 먼저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전염병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그 여파가 정서적·경제적 문제를 복합해 지닌 자살 위험군 집단에 일종의 ‘트리거’로 작동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 데이터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올 상반기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 수는 지난해 동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응급실이 폐쇄되거나 운영이 여의치 않았던 기간이 많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자살시도 관련 환자를 받지 못한 곳도 있었지만 전체 수치는 줄지 않은 것이다.

특히 경제 취약계층의 상황이 좋지 않다.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자살 시도자 중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는 이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응급의료비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개인회생이나 파산대상 또는 진행자, 3개월 내 실직자, 자살재시도자 등이 주요 대상이다.



그런데 지원 요청 규모가 커졌다. 해당 사업에 참여 중인 65개 응급실(지난 7월 말 기준)을 통해 의료비 지원을 받은 자살시도자는 올해 모두 575명으로 지난해 동기(295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연초 52개, 연말 63개) 보다 사업 참여 응급실 숫자가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관계자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린 위기 계층의 자살 시도가 늘어난 경향도 있는 것으로 봤다.

코로나19 확산 직후인 지난 3~6월 의료비 지원 사업 참여 응급실을 이용한 자살시도 내원자는 7392명에 달한다. 월별로 보면 3월 1723명, 4월 1664명, 5월 1959명, 6월 2046명으로 증가세가 분명했다. 센터는 지난 3월부터 자살시도자 응급의료비 지원 신청 이유 중 코로나19 영향을 별도 파악했는데, 3~6월 신청자 285명 중 57명(약 20%)이 이에 해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6월의 경우 지원 최대 금액을 초과해 이월 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자살시도자 중 코로나19 영향을 받았다며 도움을 요청한 실제 인원은 이보다 많다는 의미다.

대게 자살시도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지난해 사업 참여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는 여성이 1만2899명(59.9%)으로, 남성 8646명(40.1%)보다 많았고, 연령별로는 20대(23.0%) 비율이 가장 높았다.

올해 자살 사망자 및 시도자 로데이터(원자료)를 확인한 자살예방기관 관계자들은 공통으로 심각성을 우려했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올해 서울시 20대 자살자수가 2배 정도 늘었다. 여성 자살시도자 수는 지난 5월까지 1000명에 육박한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시도자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세대에 비해 4~5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도 “지난 1~4월 응급실에 실려 온 20~30대 자살시도자가 늘어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현장에서 젊은 여성의 자살 시도가 늘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극단적 시도 자체는 지난해에 비해 아직 크게 늘진 않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살시도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여름에 여성 시도자의 비율이 많이 증가했다. 의료비지원 사업 증액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카드연체율, 현금서비스사용률, 주거지원요청비율, 실업률, 자살동향 데이터 등 모두가 20대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카드 연체자들 특성을 봐도 20대, 비정규직, 1인 가구 등의 특징이 있다. 코로나19로 타격받은 20대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자살 상황에 내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김현수 센터장은 최근의 현상을 이같이 분석했다. 약한 고리가 먼저 부서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달 말 경기도에선 코로나 매출 피해를 호소하던 한 20대 자영업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달 초엔 서울에서 30대 1명과 20대 2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도 “청년 여성의 자살률은 최근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며 “특히 여성은 대면 서비스 종사자가 많고 1인 가구의 주거 불안정 문제도 연결돼 있어 이번 코로나19에서 취약함이 더 크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전체 자살 건수는 백 센터장 언급처럼 아직 급증세가 아니다. 그러나 사태가 더 장기화할 경우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우려가 있다. 이미 위기의 확산을 암시하는 불길한 신호들이 관측되고 있어 위험한 상황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구조 요청 신호가 그 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에 걸려온 전화는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11만800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4만8656건)는 물론 지난해 전체 콜(8만9488)보다 많다. 지난 2월 걸려온 전화는 9820건이었는데 3월에는 1만4351건으로 뛰었고, 이후로는 1만6000~1만7000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터진 직후인 지난 3~5월을 자살 고위험 시기라 보고 집중 홍보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봤지만, 그만큼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시민이 많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폭주해 최근 6개월간 응대한 건수(3만2749건)보다 응대에 실패한 건수(6만5993건)가 2배 더 많았다.

지난 1월 29일부터 운영 중인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 누계 상담건수는 42만9707건(지난달 말 기준)이나 된다. 확진자와 확진자 가족, 자가격리자 외에도 일반인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제숙 국가트라우마센터 보건연구사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때에 상담건수가 증가하는 패턴이 보인다. 이번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되면서 상담건수가 또다시 늘었다”고 설명했다.

민간 상담단체가 전한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상담량 자체가 엄청 늘었어요. 직원들이 ‘멘붕’ 상태예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눠보면 고민상담 유입량과 상담요청 건수가 3.5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는 밑바닥 청년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상담 건수 증가도 문제지만 상담의 내용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과거에는 청년들이 상담받을 때 문제해결을 위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토로를 해도 그냥 마음 상태를 털어놓는 정도였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죽고 싶다’ ‘삶의 의지가 없다’ 등의 표현이 굉장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음향 설비하는 청년은 지난 3월 상담 때 공연 취소에 대한 불안감 등을 토로했는데, 코로나19 지속으로 수입 ‘0’원의 공포를 현실로 겪으면서 지난달에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좌절감만 드러냈다고 한다. 장 대표는 “상담 키워드가 반년 만에 ‘불안’에서 ‘절망’으로 바뀐 느낌”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초기 실직과 실업 등에 따른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던 청년들이 이제는 좌절과 자포자기 상태로 빠졌다는 게 이들 분석이다.

단체는 상담자 상태가 심각한 정도로 판단되면 자살예방기관 등 전문기관 연계 조치를 취해왔는데, 그 건수도 5배 이상 늘었다. 장 대표는 “저희가 봤을 때 상담 정도로 자가 치유가 안 된다고 본 사례가 그 정도”라고 했다.

장 대표는 “중장년층도, 청년도 모두 너무 힘든 상황인데 청년들은 ‘존버’(버티기) 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훨씬 떨어진다. 버틸 수 있는 임대료 개월 수부터 다르다며” “지지선이 약하기 때문에 청년들의 생존이 먼저 붕괴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청년고민상담 프로그램도 포화상태다. 지난 4월 1차 모집을 거쳐 진행된 서울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당초 선정 목표 인원 700명 대비 2배 이상으로 신청자가 늘어나 수요에 맞춰 1500명의 청년 상담을 진행했다. 지난달 2차 모집에서도 신청자가 몰렸고, 이번에도 1500명 전원을 채울 예정이다.

새롭게 정신건강 위기군으로 들어온 사례들도 늘고 있다. 호남 지역의 한 청년 상담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에는 그간 상담 경험이 없던 청년들이 문의하는 비율이 체감상 늘었다”고 말했다. 이영희 토닥토닥심리상담센터장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문제와 가정 문제가 동시에 드러나 갈등이 늘어나면서 최근 부부 상담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지난 3월과 5월 2차례 진행한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국민 전체의 우울감이 14% 포인트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30대 여성의 우울감 증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은진 수원과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자살 고위험군에 대면 서비스 및 판매업 종사자, 경제적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 청년과 여성이 포함되고 있다”며 “전반적 경제 악화와 사회적 양극화가 2030 여성의 고용 불안정과 실업의 장기화로 이어져 이로 인한 우울감 증가가 자살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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