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기소한 검찰 “길 할머니‧의료진 직접 만난 뒤 판단”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사무실로 출근하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 오른쪽 사진은 그가 전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길원옥 할머니 관련 영상 캡처. 연합뉴스, 윤미향 페이스북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에게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준사기)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검찰이 길원옥의 삶을 부정했다”는 주장을 펼치자 검찰은 “검사가 직접 할머니를 면담하고 의료진의 객관적 정신감정 자문을 받아 판단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검사가 할머니를 직접 면담해 의료 기록과 할머니의 상태를 대조해 봤다”며 이를 근거로 길 할머니가 기부했을 당시 의사결정이 어려운 ‘심신미약’ 상태임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16일 보도했다. 윤 의원을 수사한 서울서부지검은 의료 전문가로부터 길 할머니의 의료기록과 정신감정 자문 결과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윤 의원이 치매를 앓던 길 할머니를 이용해 2017년 11월 할머니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7900여만원을 2년2개월에 걸쳐 기부‧증여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의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사기 혐의다. 이는 심신미약 상태인 지적장애인을 착취하거나 이들을 이용해 금전적 사기를 치는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형법 조항이다. 형량은 징역 10년 이하, 벌금 2000만원 이하로 일반 사기죄와 같다.

윤 의원과 숨진 마포 쉼터 소장 손모씨는 2014년부터 길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알고 있었고 직접 병원에 데려가 진단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길 할머니는 2014년 7월 병원에서 받은 치매 선별 검사에서 ‘확정적 치매’로 판단되는 19점을 받았고 2016년 7월 다시 치매선별 검사에서 17점을 받았다.

이는 ‘경제활동 의사 결정 불가’ 상태를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과 손 소장은 2017년 11월 길 할머니 계좌로 전달된 여성인권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게 했다. 또 그 무렵부터 올해 1월까지 9회에 걸쳐 2920만원을 추가로 기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길 할머니가 2017년 11월 22일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금 대신 국민 성금으로 마련된 돈이다.

기소 직후 윤 의원은 14일 늦은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길 할머니 영상을 여러 건 올렸다. 해당 영상은 주로 길 할머니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이 담긴 것들이다. 윤 의원은 “길 할머니의 2017~2020년 영상을 공유하는 건 평화 인권운동가로서의 당당하고 멋진 삶이 검찰에 의해 부정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네티즌이 ‘요즘 할머니 잘 계시냐’고 묻자 윤 의원은 “잘 모르겠다. 전화 통화도 안 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오늘 기소에 중증 치매 할머니를 속여 기부하게 했다고 저에게 준사기죄를 적용한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뒤 해당 영상이 담긴 게시물은 모두 삭제됐다. 현재 윤 의원 페이스북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문’과 “검찰이 덧씌운 혐의가 소명될 때까지 모든 당직에서 사퇴하고 일체의 당원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당원으로서 의무에만 충실하겠다”는 추가 입장문만 남아 있다.

정의연도 지난 15일 입장문을 통해 “피해 생존자의 숭고한 행위를 ‘치매노인’의 행동으로 치부한 점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이 억지 기소, 끼워 맞추기식 기소를 감행했다. 스스로 나서서 해명하기 어려운 사자에게까지 공모죄를 덮어씌웠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과 정의연의 이런 주장에 길 할머니 가족들은 ‘자발적 기부’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길 할머니 양아들의 부인인 조씨는 “기부금을 모금해 어르신에게 지급하고 그 돈을 다시 정의연에 기부하도록 계획했다”며 “참 이상한 기부다. 정당한 기부라면 가족들에게도 문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현재 윤 의원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 능력이 떨어졌으며 마포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던 손 소장의 사망 사실도 잊은 상태”라며 “어머님 편에서는 (기억을 못 하시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다 알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했다.

지난 5월 정의연의 회계 투명성 문제 등을 처음 공개 지적한 이용수 할머니는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윤 의원 기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없다. 윤미향 관련 문제는 법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또 “윤미향이 안타깝다고 말한 적 없다”며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이날 윤 의원을 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등 8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직후 민주당은 당헌 80조를 근거해 당직을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조치 및 윤리감찰단 구성 등에 대해선 16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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