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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약속 지켰다…무료급식소 하는 팔순 치과의사 [인터뷰]

3만명 무료진료하고 밥 봉사하는 박종수씨…“월화수 치과, 그 외에는 식당” 투잡 뛰는 팔순

박종수 원장 제공

“월화수는 치과로, 그 외에는 사랑의식당으로”

올해 팔순인 박종수씨는 투잡을 뛰는 열정적인 현대인이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치과에서 원장으로 근무한다. 그 외에는 인근 지역에 위치한 ‘사랑의 식당’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노숙인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다. 요즘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하루 평균 600명이 올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그는 치과의사라는 본업을 살려 ‘사랑의 식당’에 찾아온 노인들에게 치과 치료도 무료로 해왔다.

박종수씨의 인생은 봉사와 헌신으로 정리된다. 그는 지난 55년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농촌 지역에 방문해 의료봉사를 해왔다. 그의 손길이 닿은 환자만 무려 3만명. 사비를 쏟아부으며 봉사를 이어간 지도 이미 오래다. 1991년에는 무료급식소인 사랑의 식당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식당을 연 허상회 원장이 작고한 2018년부터는 식당 운영을 하는 복지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16일 LG복지재단은 박씨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LG의인상을 수여했다. 그가 이토록 멋진 인생을 살아온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소중한 거예요.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몸이 아프고 가난한 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거죠.”


-언제부터 의료봉사를 해왔는지

“수도 없이 했죠. 1970년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치과가 없는 시골이나 섬에 찾아가서 무료 진료를 봐줬어요. 수해를 당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의료진 꾸려서 계속 다녔고요. 지금까지 만난 환자들만 3만명이 넘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농촌에도 병원이 들어서고 건강보험도 적용되면서 환자가 없더라고요. 90년대부터는 독거노인, 극빈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어요. 틀니도 무료도 해주고 저희 치과에서 검사도 해주고요.”

-의료봉사를 시작한 계기는

“1960년도에 치과 대학을 다닐 때 아버님이 편찮으셨어요. 급하게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을 했는데 수술비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무료 진료를 요청했는데 거절을 당했어요. 거의 6개월 정도 담당 의사한테 사정한 것 같아요. 오랜 설득 끝에 무료 수술을 받았고 아버지도 다시 건강이 좋아졌죠. 그 때 주치의 분들한테 약속을 했어요. 앞으로 정말 많이 봉사하겠다고요. ‘돈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못 받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때 몸으로 확 느꼈어요.”

-본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1980년에 ‘다친 가슴을 향하여’라는 교육 영화가 나왔어요. 당시에 법무부에서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거에요. 그 때 저는 범죄예방위원을 맡았어요. 비행 청소년들을 한 명씩 맡아서 6개월 동안 교육을 시켜주는 건데요. 그 친구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아무 죄 없이 풀려나는 제도예요. 그 때 제가 한 소녀를 만났는데 글쎄 그 친구가 백화점에서 옷을 훔쳤더라고요. 너무 입고 싶고 부러워서 그랬대요. 어떤 사정인가 해서 집에 찾아갔더니 아주 엉망이에요. 좁은 움막집에 여덟 식구가 사는데 참 안타깝더라고요. 얼마나 가난한지 광주천에 버려진 배추들을 가지고 김장을 해먹었어요. 그 때 다짐했죠. 도와줘야겠다고. 아빠는 취직시켜주고 그 친구한테는 미용실 일자리도 소개 시켜줬어요. 그렇게 2년 정도 도와줬더니 한 가정이 살아나더라고요.”

-의료봉사를 하면서 보람찼던 순간은

“봉사를 갔다오면 매번 즐겁고 보람차요. 동네 사람들하고 대화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먹고. 예전에 전남 무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이랑 동네 주민들 무료 검사를 해줬어요. 그 때가 크리스마스였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쌀 한 가마니를 들고 오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주는 거라고요. 학생들하고 주민들이 카드를 하나씩 써서 거기에 붙여왔는데 참 좋더라고요.”

연합뉴스

-사랑의 식당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1990년에 직업소년원 허상회 원장님이 계셨어요. 광주시내에 떠도는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구두닦이를 하면서 야간 공부를 시킨 거예요. 이렇게 해서 1000명 정도 자수성가시켰어요. 이분은 공원에서 밥 못 먹고 떠도는 사람들한테 식사도 대접했어요. 처음에는 10명이었던 사람이 나중에는 90명까지 늘어났어요. 숫자가 감당이 안되니까 그분이 저한테 급하게 연락을 했죠. 노인들 봉사해보지 않겠냐고, 함께 모금운동 해보자고. 그러다가 ‘사랑의 식당’까지 돕게 된거죠. 허 원장님 부부께서 계속 운영하시다가 2018년부터 제가 그뜻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식사값이 100원이라고 들었다

“모든 사람이 100원을 내는 건 아니에요. 돈을 내고 싶은 사람만 100원을 내라고 해요. 그냥 공짜로 오면 무시 받는 느낌도 있을 수 있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잖아요. 나름대로 오신 분들에 대해 존중해주는 거죠. 그렇게 100원씩 20년간 모았는데 지금은 6000만원 정도 모았어요. 지금까지 돈 한푼도 안썼고요. 나중에 더 좋은 일에 쓸 생각이에요.”

-사랑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당국에서는 노숙자 증명서가 있는 사람만 무료로 밥을 주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2000원씩 내야 돼요. 근데 이게 참 어려운게 어떻게 노숙자 증명서가 있는 사람들만 일일이 확인해서 무료로 줘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힘든 분인데. 노인들 중에는 서류상에 자식들이 있지만 아들, 딸들이 다 떠나서 혼자 남은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본인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노숙자는 아니지만 힘들게 사는 독거노인도 참 많습니다. 이런 일로 충돌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죠.”

-봉사를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 생명이라고 봐요. 인간은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예요. 아무리 가난하고 돈이 없어도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기 때문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살아온 것이고요. 앞으로 남은 인생도 많은 분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김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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