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면 대장이 아니다” 개들의 권력사회 [개st상식]

책임, 질투, 복종 등 권력의 속성이 고스란히 담겨

"이 동네 대장은 나야!" 출처: cesarsway.com

개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야생의 개, 늑대들은 8~15마리씩 무리생활을 하는데요. 19세기 동물행동학자들은 개들이 서로에게 서열을 매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복잡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요.

한 세기가 지난 1951년, 마침내 개들의 권력 구조가 밝혀집니다. 이를 알아낸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동물행동학자로 꼽히는 프랭크 비치 교수입니다. 10년의 연구 끝에 정리된 그의 서열 공식은 오늘날에도 개를 이해하는 교과서처럼 활용됩니다. 그 속에는 책임, 질투, 복종 등 인간 권력의 속성이 고스란히 담겼는데요.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겠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동물행동학자로 꼽히는 고(故) 프랭크 비치(Frank A. Beach) 교수. 1951년 저서 '성별 동물행동의 규칙'은 오늘날에도 동물행동학의 교과서로 쓰인다. 출처: easternpsychological.org


권력엔 책임이 따른다, 개들의 서열 세계

성견들은 힘을 겨루어 1등부터 꼴찌까지 수직적인 서열을 매깁니다. 그렇게 결정된 대장은 식량, 잠자리, 짝짓기 상대 등 모든 자원을 독차지합니다.

성견들은 힘을 겨루어 서열을 매긴다. 주로 체급, 나이, 호전성에서 유리한 개가 승리한다. 출처: Royal Veterinary College

하지만 권력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두머리는 사냥, 전쟁 등 모든 무리 활동에 앞장서야 하는데 특히 최전선에서 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물론 평화로운 시기라면 대장만큼 편한 자리가 없습니다. 제일 서러운 건 2인자입니다. 이들은 큰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하며, 결국 스스로 무리를 떠납니다. 그 외 개들은 조직의 변화에 순순히 따릅니다. 예컨대 우두머리가 바뀌면 즉각 새로운 리더에게 복종하는 식이죠.


리더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열이 높은 개는 성격이 나쁠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추측이죠. 하지만 비치 교수는 “개에 대한 모욕이다. 권력순위가 높은 개일수록 공격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우두머리 개는 으르렁대지 않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여유가 넘칩니다.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지금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한바탕 서열 정리가 끝난 이후로 리더는 무리 내에서 싸우지 않습니다. 이처럼 싸움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계급 시스템의 순기능이지요.

"이 녀석 또 시작이네ㅜㅜ" 서열이 어정쩡한 개일수록 불필요하게 힘을 과시한다. 출처: TheRoanoker.com

정작 요란한 것은 1인자도 2인자도 아닌 애매한 중간 서열의 개들입니다. 주변 개들에게 자주 짖고 시비 거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불안하다는 의미입니다. 중간 서열의 개들은 자신보다 약한 어린 강아지들을 위주로 으르렁대고, 쫓아다니고, 노려보면서 힘을 과시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대장으로 알고 있던 개들은 사실 불안정한 중간 계급의 개들이죠.


암수 대표가 다르다

개들은 남녀 대표를 따로 뽑습니다. 암컷은 암컷 우두머리에게 복종하고, 수컷은 수컷 우두머리의 명령을 따르죠.

한편, 성별마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수컷들은 절대적으로 힘에 복종합니다. 윗 계급의 개가 요구한다면 수컷들은 먹이, 짝, 장난감 등을 즉시 포기합니다. 반면 암컷 리더들은 상황에 따라 양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컨대 암컷 리더는 암컷 부하가 물고 있는 뼈다귀를 강제로 빼앗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헤헤, 우리 사이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딨겠어" 연구 결과, 절대적으로 힘에 복종하는 수컷들도 암컷 앞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출처: rover.com

그렇다면 암컷 리더와 수컷 리더는 어떻게 서열을 정리할까요? 비치 교수에 따르면 80%의 확률로 수컷 리더가 암컷 리더를 제압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암컷들은 훨씬 높은 계급의 수컷들을 상대로도 소유물을 90%의 확률로 지켜냈다고 합니다. 힘을 앞세운 수컷들의 위계질서도 암컷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맨날 혼나고 기죽고…서러운 아기 강아지들

어린 강아지들은 여기저기서 혼나는 서러운 시절을 보냅니다. 성인 개들은 어린 강아지들을 육체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지만, 집단의 규칙을 잘 따르고 더 높은 서열의 개들에게 존경을 표하도록 다그칩니다.

어린 강아지들은 본능적으로 귀여움을 강조합니다. 귀를 쫑긋 젖히고, 순종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꼬리를 낮게 흔드는 식이죠. 이로써 나이든 개들로부터 괴롭힘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달려드는 상대에겐 가장 취약한 부위인 배를 발라당 드러냅니다. 몹시 겁먹은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려서 복종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냅니다.

"힝, 제가 졌어요" 어린 개들은 복종의 표시로 배를 뒤집는다. 출처: tumblr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