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도 정규직도 알바·막노동…줄폐업 이후의 서울은 [이슈&탐사]

[코로나블루, 또 다른 재난] <2부>현실화 된 줄폐업 ②바닥에서 만난 사람들

일용직에 나선 사람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국민일보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작된 줄폐업 사태는 자영업자와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거 하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렸다. 기존 비정규직노동자, 식당 일용직 등 비숙련노동자들의 일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지난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노동자들의 상황은 지난 6개월 동안 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사장님
“고생은 쌔빠지게 하고 끝이 이 모양이네.” 20년째 중구 황학동 상가에서 냉면집을 운영해온 조미숙(가명·62)씨는 이달 초 가게를 폐업했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전전긍긍 버텨왔던 가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냉면을 하루 다섯 그릇도 팔지 못해 더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노원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집이 멀어 가게에서 먹고 자는 일이 잦았고,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채 60줄에 접어들었다. 큰 아들은 취업이 안 돼 방황하던 중 폭행사건에 휘말려 정신적 충격을 얻었다. 10여년전부터 혼잣말을 하며 이상증세를 보였는데 조씨는 일하기 바빠 아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병원에 가길 꺼려하는 아들을 설득하다 진이 빠졌고, 작은 아들은 형을 피해 여관 생활을 한 지 오래다.

생계를 놓지 못해 붙잡아 왔던 가게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월세 30만원 인상을 통보받았을 때부터다. “주인이 횡포를 부리니 마음이 떴다”고 했다. 당장 가게를 접으면 생계유지가 어려우니 어떻게든 버텨봤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월세를 충당할 수조차 없을 만큼 벌이가 안 됐다.

중구 황학동 인근에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폐업한 가게들을 점으로 표현했다. 노란색 점(4월24일까지 폐업), 주황색 점(6월23일까지 폐업), 빨간색 점(8월31일까지 폐업).

“왕창 무너져버렸어요. 이번 여름 장사는 완전히 꽝이었지. 지난해 여름에는 하루에 냉면 100그릇씩 팔았는데 3월 이후로는 계속 하루에 5그릇 팔았어요. 완전히 패가망신 한 거야.”

지난 4월 소상공인 대출로 받은 1000만원은 재료비와 외상값을 내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지난달까지인 계약기간만 채워 폐업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건물주가 가게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보증금 지급을 미뤘다. 조씨는 “10여 년 전 확장했던 가게를 복구해 놓으라며 1000만원을 요구해 싸우고 있는 중이다. 주인조차 농간을 하니 돌아버리기 직전”이라며 “시급 알바라도 뛰어들어서 빌린 돈을 갚아야한다”고 말했다.

박진호(가명·41)씨는 매일 새벽 5시 집을 나선다. 막노동 일감을 따러 인력사무소에 가는 길이다. 지난 6월 난생 처음 찾아갔는데 벌써 100일 가까이 됐다. 공치는 날이 절반이지만 그래도 일당 8만원, 한 달 100만원 쥐는 게 다행이다.

박씨는 본래 노점을 운영했다. 20대 초반 군 제대 후 우연히 시작한 일이 손에 익어 15년이 됐다. 그 일을 하면서 15평짜리 월세방을 구했고 결혼 해 아이까지 낳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단숨에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는 지난 16일 서초구 양재동의 한 건물 1층 상가를 철거하는 작업을 할당 받았다. 자영업을 끝마쳤던 그가 다른 자영업자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장면은 생경했다.

“죽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장사가 안돼요. 그나마 저는 일용직 일이라도 하고 있지만 60대 어머님들은 그런 일마저 없어서 굶어죽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셔요.”

바닥 일자리로 몰리는 사람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폐업한 가게들을 점으로 표현했다. 노란색 점(4월24일까지 폐업), 주황색 점(6월23일까지 폐업), 빨간색 점(8월31일까지 폐업).

자영업자였던 조씨와 박씨가 생계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대며 찾는 곳이 직업소개소다. 그런데 그곳이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종로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박정아(가명)씨는 “연결해 줄 일자리가 없으니 문을 닫은 지 오래”라며 “열흘에 한 번씩 화분에 물 주러 사무실에 나온다”고 허탈해 했다. 그가 운영하는 직업소개소는 고정 회원 20명이 있었다. 하지만 연결된 일자리는 없고, 월 중개료 5만원 감당이 안 돼 13명이 떠났다고 했다.

한 달 네댓 번 출근해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전화는 쌓인다. “월급제로 일했는데 기약 없이 쉬고 있다”는 내용이 태반이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서로 희망을 갖자고 위로하는 일이 박씨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역시 사무실 월세 70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워 대출을 이어갔다. 지난 4월 3000만원을 받았는데 벌써 다 떨어지고 또 다른 대출을 찾는 중이다. 30년째 해온 일이라 그에겐 아직 미련이 남았는데, 주변에선 앞이 보이지 않아 마음을 접은 사람이 많았다. 올해 서울에서 폐업한 유·무료 직업소개소는 175곳이다.

일을 중단한 자영업자, 그로 인해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이 모두 밑바닥 노동으로 몰리면서 노동 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는 객실관리와 식·음료 파트를 담당했던 협력업체 직원 수십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다른 호텔의 비정규직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버텼는데 그게 끝나자 단기 구인 시장에서는 피 튀기는 경쟁이 시작됐다. 평일 9만~10만원, 주말 12만~13만원 선이었던 일당이 주말 기준 9만원대로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서울의 한 대형호텔에서 일하는 객실 관리사 A씨는 “이제는 기간을 오래 두고 뽑는 구인광고는 거의 올라오지도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 며칠 일하는 단기 구인광고만 올라오고, 인건비 단가가 낮아졌는데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전했다.

하루짜리 노동을 위한 단가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몇 달을 버텨왔던 호텔의 정규직 직원들마저 해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힐튼호텔 직원 B씨는 “회사에서는 90명 가량의 인원을 감축한다고 정리해고를 꺼내들었다”며 “다른 호텔들도 (이번 해고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서) 많이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C씨도 “정규직도 해고하려는 판이지 않느냐”며 “인건비 하락과 고용불안이 완전히 고착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식당 아주머니 김화진(가명·60)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일당 받으며 일해 왔다. 코로나19 이전엔 한 달 200만원 정도 손에 쥐었는데 올 봄부터는 40만~5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지난 달 말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는 실직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광화문 주변 손님이 사라지고 거리두기 2.5단계로 영업시간이 단축돼 가게는 정직원 근무시간마저 반나절로 줄였다. 김씨 같은 일용직은 더더욱 부를 이유가 없었다.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번 주는 나오지 말라”는 지시였다. 빌라 보증금 대출 이자, 보험료, 전기세 내기마저 버거워 주변에 손을 벌렸다. 아들도 권고사직을 당한 터라 빚으로 버텨왔는데 그게 1000만원을 넘어섰다. 다른 식당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눈앞이 캄캄하다. 그가 주로 일을 다녔던 종로에서만 일반·휴게음식점 351개가 지난 6개월 사이 폐업했다. “잠이 안 오네요, 죽지 못해 사는 거죠.”

폐업 가게 다시 손 댄 사장님
서초구 방배동 인근에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폐업한 가게들을 점으로 표현했다. 노란색 점(4월24일까지 폐업), 주황색 점(6월23일까지 폐업), 빨간색 점(8월31일까지 폐업).

노래방을 하다 망한 성인자(가명·64)씨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어 다시 노래방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방배동 카페골목에서 5년 전 노래방을 열었다. 술 마신 사람들 상대하기가 싫었지만 이혼 뒤 수중에 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안 됐다.

첫 2년은 장사가 잘 됐다. 많이 버는 달엔 월세 240만원을 제하고 6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 방 6개가 모자라 대기도 있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자르고 혼자 새벽 장사에 나서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손님이 줄어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며 지냈는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이달 초 폐업한 뒤 셈을 해보니 보증금 3500만원은 미납한 월세로 사라졌다. 권리금은 커녕 창업할 때 들여놓은 기계도 챙기지 못했다. 성씨는 “건물주가 가게를 원상복구 안 하는 조건으로 기계를 다 두고 나가라고 했다”며 “개털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건물주에게 지난 3월 코로나19로 장사가 안 되니 월세를 좀 조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 당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들은 호텔 음향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일거리가 사라졌다. 무기력증과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다 몸무게가 100㎏이 넘었다.

“나이 먹고 바닥을 치니 너무 한심해서 잠을 못자고 수면제를 먹어요. 주변 상인들이 그래요. 코로나가 안 무섭대. 굶어죽게 생겼는데 코로나가 뭐가 무섭냐고.”

방배동 카페골목에서 폐업한 노래방은 성씨 하나가 아니다. 다른 업종은 80% 정도가 가게를 내놨고 노래방은 거의 100%라고 한다. 성씨는 “골목에 노래방이 25개인데 25개 다 내놨다. 다들 보증금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골목에 월세가 100만원 정도 싼 자리가 나와 그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악화되는 민생 경제 데이터

빚에 연명하다 탈이 난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민일보가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4대 카드사(KB국민카드, 삼성카드, 신한카드, 현대카드) 카드론 연체채권 잔액은 지난 1월 4961억2000만원에서 지난 7월 5139억4500만원으로 178억2500만원 가량 증가했다. 7월말 기준 연령별 연체채권 잔액(연초 대비 증가액)은 20대 197억3900만원(12억6500만원), 30대 985억9300만원(11억400만원), 40대 1768억1400만원(48억7700만원), 50대 1434억3100만원(59억6800만원), 60대 753억6400만원(46억1400만원)으로 전 연령에서 모두 증가했다. 카드론 총 채권잔액 역시 연초 19조7746억8600만원에서 21조2507억7600만원으로 1조4760억9000만원 늘었다.

법원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은 3만3005건으로 전년 동기(3만853건) 대비 2152건(7.0%) 늘었다. 지난해에는 2018년 보다 2240건 늘었는데 올해는 8개월 만에 지난해 상승분의 96.1%까지 늘었다. 그만큼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충격이 쌓이면서 상황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월별 신청건수는 지난 4월 3945건, 5월 4031건, 6월 4894건, 7월 4895건, 8월 3996건으로 증가세가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감폭을 봐도 지난 3월에는 10.7%(416건) 증가였는데, 6월에는 31.1%(1162건), 7월에는 12.3%(538건) 증가했다.

법인 파산도 지난 8월까지 711건 접수돼 지난해 동기(626건) 보다 85건(13.6%) 많았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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