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간절함과 진정성, ‘베르테르’ 나현우 있기까지[인터뷰]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베르테르 역을 맡은 배우 나현우

tvN '더블캐스팅'에서 우승한 후 뮤지컬 '베르테르' 주인공 베르테르를 연기하고 있는 나현우. 잼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든 앙상블처럼 주연을 꿈꿨다.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연습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오디션에 참가했다. 앙상블 수입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무대에 오르는 시간을 제외하고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분주했던 날들이 이어졌지만 배역을 따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연기할 수 있었고, 노래할 수 있었으니까. 주목 받지 못했던 앙상블을 위한 프로그램 tvN ‘더블캐스팅’ 우승을 거머쥐고, 마침내 뮤지컬 ‘베르테르’ 주연으로 발탁된 배우 나현우의 이야기다.

나현우는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감히 누려도 되는 기회인지 모르겠다”며 “지금도 문득 ‘모든 순간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 벅차다”고 말했다. 나현우는 2014년 연극 ‘햄릿, 여자의 아들’로 데뷔했다. 제대 후 2017년 뮤지컬 ‘나폴레옹’에 앙상블로 참여했다. 올해 출연한 tvN ‘더블캐스팅’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 더해져 출연을 결심했다. 결과는 우승. 나현우는 “지금 생각해도 꿈같다”고 말했다.

‘내가 잘 돼야 앙상블이 잘 된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나현우는 한쪽 어깨에 늘 책임감을 얹고 가려 한다. “우승을 하고 ‘베르테르’ 주역을 맡으면서 혹시라도 앙상블 동료들이 질투나 박탈감을 느끼면 어떡하나 생각했는데, 모두가 진심으로 응원해줘서 신기하고 고마웠어요. 그들에게 무대가 얼마나 간절한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제가 어서 좋은 배우로 크는 것이 앙상블에 다양한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갚아야죠.”

뮤지컬 '베르테르'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나현우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 하나를 꼽자면 진정성이다. 겸손하고 진중했다. “그저 운이 좋았다”는 그의 말에 “운도 실력인걸요. 잘하잖아요”라는 칭찬을 건네자 고개를 숙이곤 머리를 긁적였다. “굉장히 들떠있을 줄 알았다”고 말하자 “그걸 가장 경계하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말이었다. “참 말이 안 되는 결과(‘더블캐스팅’ 우승)가 나와서 ‘베르테르’의 주인공이 됐잖아요. ‘내가 과연 이 자리에 서도 괜찮은 사람인가’ 계속 반문했어요. 다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열심히 했다는 점이에요. 진짜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베르테르를 연기하는 배우는 모두 5명이다. 엄기준, 카이, 유연석, 규현 그리고 나현우. “캐스트를 보는데 ‘아, 내가 살 길은 연습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와서 가장 늦게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만큼 귀한 자리를 얻었으니까, 어느 신인 배우라도 그렇게 할 거예요.”

뮤지컬 '베르테르'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뮤지컬 ‘베르테르’는 1774년 출판된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작가 고선웅의 감각적인 극본을 토대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롯데에는 약혼자가 있었다. 사랑이 커질수록 베르테르의 고뇌는 깊어지고, 끝내 비극을 맞는다.

롯데와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롯데를 연기하는 김예원은 나현우의 연습을 물심양면 도왔다. 나현우는 “예원 누나가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도와줬다”며 “누나를 보면서 ‘나중에 후배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베르테르’는 2000년 초연부터 정형화된 서양 뮤지컬의 어법을 내려놓고 한국 감성에 맞게 스토리와 무대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년간 풍성한 실내악 중심의 풍성한 사운드와 드라마틱하지만 절제된 감정선이 어우러져 국내 대표적인 클래식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나현우의 캐릭터 분석이 더해지니 극은 한층 깊어졌다.

“베르테르의 우울과 좌절보다 아픔을 강조해 격정적인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8㎏을 감량했어요. 그의 내면에는 태풍이 있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만큼 왜소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베르테르가 야위어 있는 만큼 공연의 폭발적인 부분이 부각된다고 생각했어요. 전 이 공연을 단순히 잔잔하고 서정적인 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당히 거친 면이 있죠.”

베르테르와 지금의 나현우는 서툴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나현우는 처음으로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받은 능숙하지 않은 신인 배우이고, 베르테르도 폭풍 같은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껴보는 어찌 보면 촌스러운 인물이라는 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마음은 앞서는데 방법을 모르겠고, 훌륭히 해내고 싶은데 서툴다는 점에서 맞닿아있죠. 다만 결말은 다를 거예요. 전 반드시 좋은 배우가 될 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료이자 선배로 나아갈 겁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