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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로튼’하며 생각했죠. 아, 뮤지컬 배우하길 잘했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닉 바텀 연기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닉 바텀 연기한 배우 강필석. 엠씨어터 제공

배우 강필석은 2004년 ‘지킬 앤 하이드’로 데뷔한 후 15년 넘게 쉼 없이 무대 위를 달렸다. ‘아랑가’ ‘쓰릴미’ ‘서편제’ ‘광화문 연가’까지 타이틀롤을 꿰차며 정상에 섰고, 지난해부터는 에너지 충전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뮤지컬 ‘썸씽로튼’을 만났다. ‘아, 이건 해야겠다.’ 다시 열정이 솟았다.

강필석은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15년을 뮤지컬 무대에 서 온 배우가 뮤지컬을 찬양하는 뮤지컬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며 “지쳐 있던 내게도, 삭막한 사회에도 단비 같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썸씽로튼' 공연 중 한 장면. 엠씨어터 제공

‘썸씽로튼’은 낭만의 르네상스 시대, 당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다. 지난해 내한 공연의 폭풍적인 반응에 힘입어 올해 라이센스 초연이 성사됐다. 강필석은 셰익스피어의 등장으로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한 극단 대표 닉 바텀을 연기한다. 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후손을 자처하는 예언가 토마스를 찾아가 미래를 점치면서 유쾌한 뮤지컬 찬가가 시작된다.

닉의 예술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지만 어쩐지 흥행은 쉽지 않다. 후원이 끊긴 극단, 지속하는 채무 압박, 이웃이 버린 양배추를 주워다 요리를 하는 아내. 닉은 생계 걱정에 몸이 닳는다. 셰익스피어가 대중의 관심을 끌수록 바텀 형제는 더 가난해졌다. 닉은 미래를 내다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만난 예언가 토마스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답을 내놓는다. “뮤우~지컬”.

세상에 처음으로 뮤지컬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고 음악은 경쾌하게 터져 나오면 강필석의 몸짓도 한층 커진다. 그가 경쾌한 쇼 뮤지컬에서 탭 댄스까지 곁들여 춤을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춤이 정말 힘들었어요. 남들은 두 번이면 척척 하는 걸 저는 열 번을 해도 안 됐어요. 연습 말고는 방법이 없었죠. 춤과 코믹 연기까지,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공연이죠.”

셰익스피어와 펼치는 탭댄스 대결 장면에 특히 공을 들였다. 닉의 열등감이 폭발하면서 상상 속에서라도 셰익스피어를 보기 좋게 이기는 장면이다. 춤도 처음인데, 탭댄스는 생각도 못 했던 요소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확인부터 해야 했어요. 탭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맑은 소리를 내는 게 관건이었죠. 처음에는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웃음) 안무 선생님께 ‘냉정하게 말해달라’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랬더니 ‘정 못하겠으면 다른 장면으로 바꿀까요?’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밤낮으로 연습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극하려고 일부러 그러신 거였어요.(웃음)”

'썸씽로튼' 공연 중 한 장면. 엠씨어터 제공

음계에 따라 대사를 읊고, 음악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며, 주인공이 난데없이 탭댄스를 추는 오묘한 공연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말을 닉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극에 음악을 섞은 기괴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소재가 마땅치 않았다. 닉은 다시 토마스를 찾아갔다. “셰익스피어가 앞으로 내놓을 작품 중 하나만 알려주세요.”

토마스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오믈릿’(Omelette)이라고 외쳤다.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Hamlet)의 철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지금부터 ‘썸씽로튼’의 진가가 발휘된다. 숨은 뮤지컬 찾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레미제라블’ ‘렌트’ ‘애니’ ‘캣츠’ ‘시카고’ 등의 명장면과 대사가 패러디될 때 관객석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강필석은 “원래는 극 속 패러디 장면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썸씽로튼’은 다르다. 이 작품이 곧 패러디다. 극 안에서 뮤지컬의 역사가 사르르 지나가는데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닉 바텀 연기한 배우 강필석. 엠씨어터 제공

셰익스피어를 향한 닉의 심정은 부러움에서 질투와 집착으로 번지는데, 강필석은 여기에 동생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고 해석했다. “셰익스피어가 참 꼴 보기 싫어요. 부럽기 때문이죠. ‘셰익스피어 너무 싫어!’라는 대사를 칠 때는 최대한 유치하게 보이려고 노력해요. 원천은 질투심이지만, 동생 나이젤에 대한 미안함도 담겨있는 것 같아요. 닉은 나이젤이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극작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해요. 동생을 키워주지 못 하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거죠.”

강필석은 ‘썸씽로튼’의 참신함이 한국 뮤지컬계에도 전해지길 바란다. 그는 “한국 뮤지컬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빠른 발전을 이뤄왔다”며 “한국에도 ‘썸씽로튼’처럼 수출할 수 있는 기발한 창작 뮤지컬이 탄생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썸씽로튼’ 초연을 맡은 배우가 된 후 새삼 느낀 점도 있다. “아, 뮤지컬 배우 하길 잘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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