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가라앉은 진실…세월호가 그랬듯, 다시 국가가 답하라

침묵의 3461m, 거기 진실이 있다 -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어떻게

지난 25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서 실종 선원 가족들이 강형식(오른쪽) 외교부 해외안전관리 기획관에게 유해 수습을 요청하고 있다.

당신은 스텔라데이지호(Stellar Daisy)를 얼마나 아는가.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사라진 이 배의 진실은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축구장 3배 크기 배가 수심 3461m 밑에 가라앉았다. 길이 312m, 폭 58m의 선체는 72조각으로 거칠게 쪼개졌다. 실종 선원 22명 가운데 우리 국민은 8명이다. 대학 졸업 후 첫 항해에 나선 청년부터 파산한 한진해운 출신 선원까지 면면도 다양하다.

문재인정부가 이 배를 외면한 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53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미국 업체 ‘오션인피니티’와 계약해 잔해 수색에 나섰다. 국내 해양사고 중 유일한 심해수색이었다. 3일 만에 블랙박스(VDR·항해기록저장장치) 2대 중 1대를 찾는 성과도 있었다. 침몰 직전 선원들의 육성 등 정보가 담긴 기기였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훼손으로 데이터 복구에는 실패했다. 잔해와 함께 발견된 유해도 그대로 두고 왔다. 눈앞에 유해를 두고 수습하지 못한 것이다. 업체 측은 “한국 정부와의 업무계약서에 유해 수습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유가족들은 반발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희망 쏜 ‘심해수색’ 공청회…그리고 더비셔호

그렇다고 희망을 멈출 순 없다. 지난 25일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는 다시 한번 수심 3461m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줬다. 이날 전문가들은 심해수색을 위한 기술은 이미 충분히 확보됐다며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의지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5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미공개 영상에서 블랙박스(VDR·항해기록저장장치)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됐다. 당시 수색 영상 일부.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각종 심해작업을 할 수 있는 업체들이 이미 많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라며 “침몰 원인 조사와 선박 안전 증진에 대한 정부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주노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도 “공청회를 통해 심해수색과 원인 규명에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이제 국가가 가족들과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9년 만에 첫 공식조사…믿었던 국가의 배신

공청회에서는 스텔라데이지호보다 더 시선을 끈 배가 있다. 영국 국적 화물선 ‘더비셔호(Derbyshire)’다.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와 꼭 닮은 이 배는 재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질문에 하나의 해답을 준다. 영국 정부는 국민의 손을 놓지 않았다. 뒤에는 유가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더비셔호는 1980년 9월 10일 일본 오키나와 해역에서 태풍을 만나 교신이 끊겼다. 자국민 44명의 실종에 영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이 진상조사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태풍이 침몰 원인일 것’이라고만 했다. 더비셔호는 그렇게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정부가 첫 공식조사에 나선 건 침몰 9년 뒤다. 더비셔호의 쌍둥이배 1척이 침몰한 게 계기가 됐다. 조사는 실패였다. 수석조사관 1명이 모든 권한을 쥐고, 조사를 이끌었다. 선사와 조선소 그리고 더비셔호를 검사한 로이드선급은 변호사를 고용해 책임을 피해갔다. 가족 의견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더비셔호 선체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act of God(천재지변).” 정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캠페인 모습. 폴 램버트씨 제공

국가에 배신당한 가족들은 거리로 나갔다. 영국 시민과 언론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외로운 싸움 중인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과는 천양지차였다. 덕분에 가족들은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TF)에서 80만 파운드(약 12억원)를 지원받아 선체 수색에 나설 수 있었다.

가족들은 1994년 6월 수심 4200m 바닷속에서 더비셔호를 찾아냈다. 배는 2500여 조각으로 흩어진 상태였지만 14년 만의 발견에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손을 들었다. 유럽연합과 각각 100만 파운드를 내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와 심해수색 계약을 맺었다. 우즈홀은 세계 최고 권위의 해양기관으로 앞서 타이태닉호 수색 등에 숱한 성과를 냈다. 가족들은 과학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44일간의 대장정…13만5774장의 선체 사진

1997년 오키나와 해역에서 44일간의 대장정이 펼쳐졌다. 수중 로봇이 심해를 누비며 13만5774장의 정밀사진과 200시간 분량의 영상을 찍었다. 이렇게 모인 증거는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짜 맞춰져 ‘모자이크’로 완성됐다. 같은 해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이 증거를 바탕으로 2차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3년 뒤 개최된 청문회에는 전문가 26명이 나와 증언했다. 정부는 가족의 참여를 보장했고 법률대리인 비용을 부담했다.

일본 오키나와 인근 수심 4200m 바다에서 발견된 더비셔호 선체.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1998년 더비셔호 침몰사고 조사팀이 심해수색 끝에 밝힌 참사 원인은 '선수부(배 앞부분) 침수'였다. 조사팀은 침수가 어떻게 침몰로 이어졌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한 뒤 3D 영상을 제작했다. 유튜브 캡처

잠정적으로 14개 침몰 시나리오가 세워졌고 과학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가설이 하나씩 지워졌다. 침몰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 모형시험도 거쳤다. 이렇게 드러난 참사 원인은 ‘선수(배 앞부분)부 침수로 인한 침몰’이었다. 포렌식 심해수색과 과학이 없었다면 밝혀내기 힘든 진실이었다.

영국은 원인 규명에서 더 나아가 선박 안전에 대한 20가지 권고사항도 법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의 진실이 담긴 VDR 설치 의무화다.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표 폴 램버트씨는 “결국 국가는 약속을 지켰다. 한국 정부도 예산을 확보해 스텔라데이지호 진상조사에 나서길 바란다”며 “또 다른 희생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진실 규명, 열쇠는 ‘포렌식 수색’

해양전문가들이 일제히 더비셔호를 거론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포렌식 심해수색’에 있다. 나머지 한 대의 VDR 본체를 수거해도 복원에 실패하면 원인 규명이 어려워지는데 이때를 대비해 선체 곳곳의 증거를 ‘포렌식 기법’으로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렌식 수색은 가능한 모든 흔적을 찾는 데 집중된다. 그러려면 우선 선체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화질이 뛰어난 카메라로 촬영해야 한다. 사람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무인잠수정(ROV)’이 진입한다. 전문조종사는 ROV가 찍은 실시간 영상을 보면서 선체 구석구석을 찾아 들어가도록 명령만 하면 된다.

더비셔호 심해수색에 활용된 원격 조종잠주정 'JASON'.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7000m 심해에서도 수색작업이 가능한 무인잠수정(ROV) 'Magellan 725'의 모습. 이 ROV는 1994년 더비셔호 선체 수색작업에 투입됐다.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특히 2차 심해수색 때는 일반 ROV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침투용 ROV(Penetration ROV)’가 활용될 수 있다. 조타실이나 선실에 들어가 증거를 수집하고, 집게 팔을 이용해 유해와 유품을 수습하는 작업이다. 상당수의 유해가 조타실에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에 최적화된 장비라는 평가다. 앞서 침투용 ROV는 타이태닉호 수색 당시 일기장, 시계, 반지까지 수거한 바 있다.

여기에 라이다(LiDAR) 기술까지 더해지면 선체를 3D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라이다는 선체에 레이저 빛을 쏴 거리와 형상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첨단기술로 보이지만 미국에선 이미 30년 전 개발해 활용되고 있다. 강희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과거 청진기 검진 수준에서 이미 MRI 수준의 자료 확보와 사고원인 분석이 가능해졌다”며 “우리나라도 진보된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국가가 답할 때

전문가들은 재난 피해자들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때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고를 무조건 책임지라는 게 아니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참사 원인을 밝힐 때 막연한 추측 대신 ‘과학’과 ‘증거’로 접근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삼등기관사 문원준(가운데)씨가 2016년 1월 한국해양대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축사를 하고 있다. 문씨의 오른쪽에 사고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한희승 회장이 앉아 있다. 유튜브 캡처

2018년 9월 15일 더비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추모비 제막식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더비셔호 가족대책위원회

서 수석연구원은 “노후선박 사고가 잦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가상 시뮬레이션에만 의존해 원인을 추측해야 하냐. 과학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불필요한 논쟁도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차 수색은 외교부가 주관해 선체 위치 확인과 VDR 회수 등 성과가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다”며 “국내외 조선·해양전문가 그룹의 사전연구를 거쳐 증거를 습득하고, 과학으로 원인을 밝혀야 이미 투입된 예산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국내 심해 수중탐사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 잘못이 명확한 세월호 참사와는 약간 다르지만,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도 한국 기업에서 벌어진 일인 터라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재난, 안전 관련 법안들이 오랜 기간 국회에 계류돼 있다. 입법을 통해 재난이 벌어졌을 때 국가의 역할과 책임 범위를 정하고 기업을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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