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옛 소련의 30년 화약고… 국가 전면전으로 번지나

아제르바이잔 vs 아르메니아계 분리 세력, 이틀째 무력 충돌
민간인 포함 39명 숨지고 수백명 부상… 2016년 이후 최악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교전이 이틀째에 접어든 28일(현지시간)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스테파나케르트 주민들이 방송을 통해 교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중앙아시아 국가 아제르바이잔과 이 나라 내부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의 무력 충돌이 28일(현지시간) 이틀째 격화되고 있다. 양측 갈등이 ‘30년 앙숙’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국가 대 국가 전면전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현지 언론 등 외신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양국의 오랜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의 결과 이날까지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39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흘간의 교전 끝에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2016년 이후로는 최악의 결과다.

어느 쪽이 먼저 도발을 감행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양쪽 모두 상대편이 먼저 도발해 응전할 수 밖에 없었다며 전쟁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있다.

다만 영국 BBC방송은 같은 튀르크족 국가이자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지지가 아제르바이잔을 과감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자키르 해새노프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터키군의 지원을 받아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수복을 뜻한다.

분쟁의 진앙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캅카스에 위치한 지역으로 양국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30여년간 화약고였다. 국제사회는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정하지만 사실 인구의 대부분은 아르메니아인이 차지하고 있다.

소련 시대에는 양측의 갈등이 비교적 잠잠했다. 소련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자국을 구성하는 여러 공화국 가운데 아제르바이잔공화국 소속으로 두면서도 아르메니아계의 자치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물밑에 가려져 있던 양측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독립공화국을 선포하고 아르메니아로의 통합을 추진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들의 독립 요구를 묵과하지 않았고 양측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1994년 5월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3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명이 전쟁 난민으로 전락했다. 피의 전쟁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계가 실효 지배하는 걸 주요 내용으로 하는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일단락 됐다. 하지만 항구적 평화협정을 도출하는 데 실패하면서 양측의 아슬아슬한 대치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2017년 아르차르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아르메니아 하나 뿐이다.

양측 갈등이 격화되면서 아르메니아도 나서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아제르바이잔이 계획된 침략행위를 했다”며 계엄령과 국민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실제 전투에 나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위치한 남북 캅카스 지역은 카스피해의 석유·천연가스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통로다. 양국 긴장 증대는 세계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프랑스·독일은 즉각적 휴전을 촉구했고, 이란은 대화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전통적 우방국으로 알려진 러시아도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공언하며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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