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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수술대 오른 ‘김영란법’…공정이냐, 경제냐 그것이 문제 [스토리텔링경제]


“올해처럼 농민이 어려웠던 적이 없습니다. 정부 전체 논의 과정에서 결정됐습니다.”

‘김영란법’으로도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 전격 개정이 이뤄진 배경에 대해 국무위원인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8일 내놓은 답변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0일 추석 기간에 한해 김영란법 선물 가액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50일 이상 이어진 장마와 태풍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수산업계 상황이 반영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엎친 데 덮친 격인 경제 상황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뜻은 좋으나 경제가 형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위반자를 형사 처벌하는 법이 경제 상황에 따라 휘둘려도 되느냐는 논란이 핵심 쟁점이다. 김영란법의 근간에 생채기를 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경제 법안이냐’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취지(청탁금지)와 수단(가액기준)의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해묵은 지적이 코로나19를 맞아 또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 쏘아 올린 신호탄
김영란법은 별칭이 암시하듯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운을 뗀 법이다. 권익위원장을 지내면서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법에 반영했다. 그는 법안의 국회 통과 이전인 2012년 12월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직자가 신규 채용될 때부터 청탁에 대응하는 법을 교육받아야지 청탁 문제가 불거진 후 처벌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

김 전 위원장이 쏜 신호탄은 사회와 정치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왔다. 논의를 거치면서 당초 공직자에게만 적용하려던 법은 범위를 대폭 넓혔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언론인, 교사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에서도 합헌 판정을 이끌어내며 법의 당위성을 증명해냈다. 한국 사회에 청탁을 방지하는 법이 첫 발을 내딛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떡 주는 것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
부정청탁을 평가하는 법의 잣대는 엄정했다. 2016년 12월 나온 법원의 첫 판결이 대표적이다. 춘천지법 신청32단독 이희경 판사는 경찰에게 떡을 선물한 A씨(55·여)에게 김영란법을 적용해 과태료 9만원을 부과했다. 한국 사회 정서를 토대로 떡을 돌리는 일조차 불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판결의 근간이 된 규정은 김영란법의 하위법령이었다. 대가성이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의 취지를 준용했다. 그러면서 ‘가액기준’이라는 김영란법만의 독특한 잣대를 참고했다. 김영란법은 법 적용 대상자와 직무 관련성이 있을 경우 세 가지 분야에서 가액을 초과했는지 들여다보게끔 돼 있다. 법 적용 초기에는 식사 등 음식물의 경우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여야만 법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를 어길 경우 수수액의 2~5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설령 대가성이 없더라도 문제를 삼을 수 있도록 보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1회 100만원 이상 또는 연간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와 상관없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금액’을 기준으로 ‘청탁’이라는 뿌리를 뽑아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가액기준’이 불러 온 혼란 어쩌나
문제는 이 규정이 법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분야에서 휘둘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대가성의 잣대로 준용하는 3가지 항목이 경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혼란을 가중했다. 김영란법이 발효한 지 4개월 만인 2018년 1월 17일 첫 수정이 가해졌다. 선물 가액기준을 농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하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축소했다. 대신 화훼업계를 고려해 화환·조화는 10만원을 유지했다. 정치인인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이 가액기준 조정을 강력하게 요청한 점이 반영됐다.

코로나19가 닥치자 김영란법은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10일부터 다음 달 4일 사이 농수산물의 가액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했다. 경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김현수 장관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조치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공교로운 부분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수산물 선물 가액기준이 10만원으로 상향된 2018년 설과 추석 때 농·축산 선물세트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4%, 4.2% 증가했다. 가액기준을 20만원으로 상향한 올해 실적은 지난해 추석보다 47.6%나 훌쩍 뛰어올랐다. 코로나19라는 가뭄 속 단비 역할을 톡톡해 해버린 것이다.

경제적인 효과가 수치로 드러나는 상황은 향후 김영란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숙제를 남기는 지점으로 꼽힌다. 참여연대는 지난 10일 “경제위기 때마다 김영란법을 완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측면에서 이번 결정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논평한 바 있다. 공정과 경제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두고 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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