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일 날까 두렵다” 구멍 커지는 언택트 돌봄 [이슈&탐사]

[코로나 블루, 또 다른 재난] <3부> 언택트, 배려가 없었다 ③·끝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비대면 사회에서의 사회안전망에 대해 개인도 국가도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하기에는 벌써 시간이 7~8개월이나 지났다. 언택트 사회에서의 안전한 돌봄에 대해 사회가 너무 손 놓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진단한 전염병 시대 위기·취약계층 돌봄 상황이다. 국민일보는 ‘코로나 블루, 또 다른 재난’ 시리즈를 통해 위기·취약계층이 처한 현재 상황을 살펴봤다. 그의 말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동안 공공 돌봄에서 방치된 위기·취약계층들은 또 다른 재난에 휩쓸리고 있었다.

자살 관련 각종 데이터는 크게 악화됐다(국민일보 9월 8·21·28일자 1면 등 참조). 폐업 및 파산과 그에 따른 실직의 증가,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인한 관계망 약화 등 문제는 위기·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한 자살 고위험군 확대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방역을 우선한 비대면 정책은 이를 해결할 사회적 돌봄 시스템마저 헐겁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일상이 된 코로나 상황, 이른바 ‘위드 코로나’ 상황을 가정한 안전한 돌봄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방역 우선 탓에 생긴 구멍

“이곳은 사실상 업무 마비 상황입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행정 최전선인 서울의 한 동주민센터 관계자 말이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할수록 취약계층 발굴이 되레 어려워지는 모순적인 상황을 지난 7개월간 겪었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책이 주로 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하달되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주민센터는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 및 지급 기간에는 관련 업무 폭주로 취약계층 돌봄 사업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주민센터 관계자도 “모든 직원들이 주말에도 나와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방역 지침 상 대면 업무를 하지 못하다 보니 업무 강도는 두 배로 늘었고, 서비스를 받는 복지 대상자는 줄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동주민센터는 3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 계층 가정 방문을 중단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3개월에 1번 꼴로 겨우 현장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본래 인원이 부족했는데, 이마저도 못하게 됐다. 전화 상담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복지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염병 사태 초기에는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휴관을 했었는데, 돌봄 공백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토로하는 취약계층이 급증했다. 방역을 위한 비대면 정책 공문이 내려와 온라인 위주로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구멍은 많았다. 서울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의 유정경 맞춤형지원팀 팀장은 “수업 교재와 물품을 전달하고 프로그램 자체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요리 키트를 보낸 뒤 온라인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데 장애가 있는 분들은 영상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또 인력이나 예산 등 문제로 촬영, 편집 등 작업을 사회복지사들이 대응하느라 업무강도는 강화됐다.

취약 계층의 온라인 접근성도 문제였다. 저소득층에는 통신료가 부담이 되고 장애인·노인들은 기기들을 제대로 다루기 쉽지 않다. 복지관에서 취약 계층 맞춤형 동영상을 제작해야 하는데, 설비도 인력도 모자라다. 유 팀장은 “기기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려 해도 이를 모여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기응변식 현장 대응은 한계
세화종합사회복지관은 인천 연수구의 임대아파트 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단지 1곳만 1600세대인데, 이중 1000세대가 기초생활수급자다. 장애인은 500세대 정도라고 한다. 이곳 역시 전염병 사태 초기 휴관으로 인한 돌봄 공백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싹텄다. 김용길 세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자치구에서 명확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가 역으로 ‘지침을 좀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며 “더 이상은 막연하게 휴관만하고 기다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화복지관은 전 직원을 동원해 하루에 50가구씩 안부 전화를 돌려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전화로는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는 이들을 따로 추렸고, 간식을 싸들고 가 1대1로 마을 산책을 했다. 음식, 생필품 또는 방역 물품을 포장해 배달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제작된 키트를 전달하기도 했다. 집단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중단돼 기존 사업계획서에 없던 프로그램을 급조한 것이다.

다른 복지현장도 ‘각개 전투’를 해왔다. 백명희 서울시복지재단 지역공동체팀장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각자 도생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할 일을 찾아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돌봄만 진행하는 곳도 있고 대응 방식이 다 달랐다”고 설명했다. 백 팀장은 “정부나 공공에는 ‘만나서 문제될 바에는 안 만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입장인데 현장에서는 그러다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소규모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에서는 인력의 문제가 발생했다. 복지사들이 복지관에서 10명을 모아놓고 한 번에 제공했던 프로그램을 2명씩 5차례 나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 팀장은 “복지 서비스가 개별화되고 소규모 형태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누락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우수명 대림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발빠르게 전화, 화상, SNS를 활용하거나 외부활동에 인원 제한을 둬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복지사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서비스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돌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현재의 비대면 정책은 돌봄이 시급한 위기·취약계층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언택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복지관을 휴관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취약계층에겐 서비스가 사라지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죽음에 준하는 고통이 온다. 복지를 이어나가며 언택트 환경을 구축할 방안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석 교수 역시 “방역 대책을 마련해서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을 안전하게 돌볼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며 “복지 제공자 입장이 아닌 당사자 입장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비대면 사회라고 ‘만남을 통한 돌봄’의 본질이 바뀌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복지관 관계자는 “주민들이 복지관을 방문해 서로 관계를 맺는 게 서비스의 본질”이라며 “비대면은 복지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효율을 높일 수단 정도”라고 말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방역 지침을 지키는 선에서 취약 계층과의 접촉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고 다양한 실험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며 “문 너머에서도 대화는 할 수 있다. 방역지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접촉면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선정 인천복지재단 연구위원도 “사회복지에는 비대면이 있을 수 없다. 복지관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가 안 되니 찾아가는 서비스들을 대안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복지 공백이 많다”고 말했다.

복지 전달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의 복지제도는 정상 상태를 가정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비상상태가 장기화될 때는 전혀 무방비 상태다. 특히 사회복지는 전부 대면 기준으로 만들어져 이론도 없고 대책도 없다”며 “단기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면 지금부터라도 위험을 낮추면서 돌봄을 줄 수 있는 지식과 기술, 인력을 마련하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까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고 본다면 지금이라도 보건복지부가 복지관 등 활동가들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코로나19는 누적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촉발시키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시대) 국가는 복지 서비스 제공 문제를 (기존의)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하지 말고 안전한 생활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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