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판 대나무 숲…캠퍼스 성폭력 제보 익명계정 확산

미국, 영국 20개 이상 대학가 ‘서바이버스(survivors)’ 익명 인스타그램 확산

왼쪽부터 영국 더럼대 외관, 더럼대 서바이버스 계정.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과 영국 등의 주요 대학 학생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캠퍼스 내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계정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 대학교 등에서 익명의 제보를 받은 글을 올리는 SNS 계정 ‘대나무 숲’과 비슷한 형태로, 제보 내용은 ‘성폭력 피해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CBS 뉴스는 미국, 영국,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20개 이상의 대학을 중심으로 ‘서바이버스’(Survivors, 살아남은 사람들)라는 익명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계정은 학생들에게 캠퍼스 내에서 강간, 성적 괴롭힘, 스토킹 등 성적으로 피해를 본 경험을 제보받아 익명으로 내용을 공개한다.

익명의 학생이 같은 대학교 내 또래 학생에게 성적인 피해를 당했으나 이를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는 내용을 제보했다. '세인트 루이스 서바이버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을 확인한 결과 영국 더럼대학교,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콜롬비아 대학교, 코넬대학교 등 학교 이름에 ‘서바이버스(survivors)’라는 단어를 붙여 만든 계정이 수십개 검색됐다.

이들 계정에는 학내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글이 이미지 파일 형태로 게시돼 있다.

게시물에는 ‘트리거 주의’ ‘콘텐츠 내용 주의’ 등의 경고 문구와 함께 피해자가 음주 후 무력한 상태에서 같은 학교 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 대학 내 포럼이나 친목 모임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지난 여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서바이버스 인스타그램 계정은 현재 전 세계 전역 대학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UC버클리, 브라운, 코넬, 다트머스 대학교 등 전 세계적으로 수십개의 서바이버스 계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각 대학 계정에 올라온 제보글은 수백 개에 달한다.

미국의 케이스 웨스터 리저브 대학(CWRU) 계정에는 520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콜롬비아 대학은 189개, 세인트루이스 대학 계정은 136개의 게시물을 올렸다.

브라운 대학교, 케이스 웨스터 리저브 대학교, 코넬 대학교 서바이버스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미국 내 성폭력방지 비영리단체인 RAINN(Pape, Abuse & Incest National Network)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의 23% 이상이 대학 재학 중 성폭력을 경험한다. 영국의 ‘전국학생연합’이 지난 201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5%가 캠퍼스에 있는 동안 원치 않는 성접촉을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을 줬다.

하지만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는 것에 비해 관련 신고 수는 매우 적다. RAINN의 스콧 버코위츠 사장은 CBS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가 아는 사람일 때 신고율이 훨씬 낮다”며 캠퍼스 성폭력과 관련된 신고율이 매우 낮은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 내 성폭력 범죄의 낮은 신고율은 서바이버스 계정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영국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서바이버스 계정은 첫 게시물을 통해 “대학교 내에서 벌어진 성적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고, 피해자들이 그동안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성적 피해 경험을 익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계정을 운영하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보스턴 대학교 학생들이 운영하는 캠퍼스 서바이버스 계정. 인스타그램 캡처

‘캠퍼스 서바이버스’ 계정을 만든 미국 보스턴대 학생들도 학내 언론 매체 ‘비유 투데이’(BU TODAY)를 통해 “(서바이버스 계정을 통해) 일부 생존자들이 성폭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끼는 오명을 지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에 보스턴대 측은 “계정에 올라온 글들을 접하며 학내 성범죄로 힘들었을 학생들의 피해에 깊이 공감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 주도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캠퍼스 내 여러 이슈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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