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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협 싸움에 잊혀졌다” 진짜 시골의사의 호소 [인터뷰]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한 달 동안 공공의료개혁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시선은 광화문과 여의도에 쏠렸다. 지방의 의료 소외 문제를 해결하자며 시작된 담론이었지만 정작 논의는 전공의 파업,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의 협상 등 지극히 서울 중심적인 이야기에 그쳤다. 지방 의료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했다.

의사들은 왜 시골 근무를 기피할까. 시골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국민일보는 지난 13일 전남의 한 군에서 12년째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김모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를 내 가족처럼 돌보고 싶다”고 다짐했던 시골의사 김씨는 경영난 속에서 “가족에게 못할 짓만은 하지 말자”는 것으로 목표를 낮췄다. 또한 영세한 병원 사정상 안과·이비인후과 등의 경우에는 디테일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민간의료원이 갖추기 어려운 부분을 공공의료로 보완해달라”고 호소했다.

급여에 숙소, 교통비까지… 고질적인 구인난

뉴시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김씨는 시골 병원의 어려움 중 하나로 인력난을 꼽았다. 여기서 말하는 인력난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등 면허를 지닌 보건의료인을 말한다. 김씨의 병원이 있는 군에는 의료 관련 면허를 소지한 사람이 거의 없다. 시골 의료기관들은 인근 도시에 눈을 돌려 직원을 구한다. 하지만 왕복 1~2시간을 감수하고 시골 병원에서 일하려는 의료인은 드물었다.

“시골 지역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은 삶의 패턴이 2가지예요. 인근 도시 지역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하든지, 혼자 시골에 거주하며 주말에만 가족을 만나든지. 대부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김씨는 기본 급여 외에도 직원들의 숙소비, 교통비까지 추가로 챙겨줬다. 하지만 대다수는 몇 개월도 못 버티고 그만뒀다.

“기본 급여도 도시보다 훨씬 높은데 방값 혹은 교통비까지 추가해서 50만~60만원은 더 주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직원을 구하기 힘든걸요. 물리치료사는 좋은 조건이 나오면 바로 옮기니까 구하는 게 더 힘들고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예요.”


"내 가족처럼 돌봐드리고 싶지만…" 열악한 재정문제

뉴시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시골 환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특수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시골에 있는 의사들도 기본적인 치료는 문제없이 할 수 있다. 다만 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 등 특정 과의 전문적인 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저도 피부과 진료로 두드러기, 무좀 등은 다 봐요. 그런데 피부에 백반증이 생겨 레이저 광선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런 건 못하죠. 고가의 장비를 직접 구매해서 치료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드니까요.”

도시의 경우, 전문 병원이 워낙 많아서 환자들의 의료 선택권이 보장된다. 무릎이 아프면 정형외과, 머리가 아프면 신경과, 코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 등으로 언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무릎이 시리든, 머리가 지끈거리든 우선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병원을 찾는다. 때문에 시골 의사는 온갖 증상의 환자를 두루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김씨는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싶은 열정과 현실적인 한계 사이에서 매번 갈등한다고 했다. 더 많은 의료장비와 인력을 갖추고 싶지만 재정적인 부담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과잉 진료 아니냐" 심평원의 규제

뉴시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비용 규제도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시골 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레이더망에 쉽게 올랐다. 환자들의 내원일수, 주사 처방, 약제비, 약 개수 등이 기준치에 비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경우,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 청구를 해도 일정 기준 이상의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는 심평원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시골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골 환자들은 고된 농사일을 하느라 허리나 무릎에 고질적인 통증을 앓는다. 내복약과 주사를 많이 처방할 수 밖에 없는데도 심평원 측은 과잉진료가 아니냐고 자주 지적한다.

“지방마다 형편이 다른데…심평원은 진료지침이나 규제를 차별화하지 않아요. 그냥 전국 평균으로 일괄 적용하는거죠. 시골의 애로사항은 전혀 모르고 과잉 진료하지 말라며 압박하니까 불안하죠. 환자는 약을 달라고 하는데, 저는 마음대로 줄 수 없으니까 싸울 때도 많고요. 차라리 공짜로 물리치료, 주사 시술을 해주거나 진료비를 포기할 때도 있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개원 초기 호기롭던 의지도 점차 꺾여갔다.

“처음 개원할 때는 이런 생각을 했죠. ‘내 가족에게 해주는 만큼의 진료를 환자에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현실을 알고 나서는 ‘가족에게 못할 짓은 하지 말자’ 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부족한 군청 예산, 눈치보는 시골 병원

연합뉴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군청 복지과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의료보호법에 따르면 소득취약계층은 의료보호환자로 분류돼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의 진료비는 건강보험공단이 아닌 각 지자체에서 대신 지급한다. 환자가 병원에 많이 다니고, 약을 많이 탈수록 군청의 씀씀이가 커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자체는 환자들에게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그곳만 다니도록 강요한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하루는 제 단골 의료보호환자가 다른 병원에 지정됐음에도 저희 병원에 왔어요. 저는 지정병원에서 급여의뢰서를 받아오라고 그냥 돌려보냈어요. 이후 환자가 급여의뢰서를 가져왔고 저는 평소대로 그 분이 복용하던 약을 처방해줬고요.”

하지만 며칠 뒤 군청에서 연락이 왔다. 그 환자는 지정 병원에서만 약을 타야 하기 때문에 약 처방을 절대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예산이 빠듯한 시골 지자체 입장에서는 의료보호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환자들의 의료 선택권이 더욱 좁아진다는 것이다. 김씨도 하루 아침에 단골 환자를 잃게 생겼다.

“개원하면서 12년 동안 진료를 봐준 환자가 있어요. 급할 때는 항상 나를 찾는 분이었는데 나중에는 원치 않게 다른 곳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죠. 환자가 찾아와도 지금까지 해왔던 처방전을 뽑아주면서 지정병원에서 약을 타라고 안내할 수 밖에 없었죠.”


도농 의료격차, 가장 시급한 해법은?

연합뉴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김씨는 “시골 의원과 보건소가 경쟁할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무작정 시골 의사수를 늘리기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다. 그러자면 공공 의료기관은 민간 의료기관이 갖추지 못한 의료 행위를 제공해야 한다.

김씨는 시골 공공의료기관에서 방문진료 등 차별화된 강점을 갖출 것을 제안했다. 과거 보건소는 방문 진료·노인 재활 등 민간 의료기관이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를 갖췄지만, 요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면서 점차 실적 위주로 운영된다고 비판했다.

“보건소가 독립기관이던 시절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팀을 만들어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 댁에 직접 찾아갔어요. 그런데 보건소를 지자체가 운영하게 된 이후로는 방문진료가 많이 사라졌어요. 하루에 1~2명밖에 진료를 못 보면 비효율적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거동이 불편하고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혜택을 받지도 못하잖아요.”

마지막으로 그는 보건소에 특수과 의사를 초빙하면 좋겠다고 했다. 시골에는 이비인후과, 안과 등 특수과 의사가 거의 없으므로 주1회라도 좋으니 보건소에 전문 의료진을 초빙하자는 제안이다.

“우리나라 보건소, 보건지소 등은 입지 선정은 굉장히 잘 돼 있어요. 우리 군에도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30여개나 있거든요. 이런 곳에서 시골 병원이 갖추기 힘든 특정과 전문의를 초빙하는 식으로 전환하면 어떨까요? 환자는 멀리 안 가도 되니 좋고, 민간 의료기관으로선 감당이 안되는 환자를 보건소에서 진료해주니까 좋겠죠. 도농 간 의료 격차를 해결하는데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요.”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 김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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