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노부부가 나왔다” 당근마켓에서 생긴 일

이하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요즘 유행하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이용하다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한 네티즌의 이야기가 온라인을 달구고 있습니다. 그가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에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잘하셨어요” “감동입니다”와 같은 댓글이 쏟아졌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주인공 A씨의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는 며칠 전 사용하던 혈압측정기를 중고로 내놨다고 합니다. 3만5000원 정도면 적당할 것 같았죠. 곧이어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딱 5000원만 깎아 3만원에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진 문장. “깍을려고 하는게 아니고 돈이 모자라고 필요해서 그레요, 죄송해요.”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제멋대로였습니다. 딱 봐도 모바일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인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제가 당근 채팅에 올렸어요”라고 시작하는 문자 한 통이 그에게 도착했습니다. 마음대로 가격을 낮춰버린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일하시는데 방해될까 조심스러워요”라는 말도 더했습니다. A씨는 꼭 필요하다는 상대방 말이 마음에 걸린 모양입니다. “저도 3만원에 꼭 드리고 싶어요!”라고 답장을 보냈다가 “아니 2만5000원에 드릴게요”라고 다시 썼습니다.


거래는 서울지하철 5호선 마포역 3번 출구에서 이뤄졌습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가 편한 시간과 장소를 배려하기 바빴는데 이 과정은 A씨가 공개한 메시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주고받은 문자는 이렇습니다. “집사람 몸이 안 좋아 전철 타고 갑니다” “교통비 드니까 나오지 마시고 3번 출구 쪽 개찰구에 계세요. 제가 갈게요” “시간 충분하니 천천히 일 보세요. 제가 기다릴게요”….

여차여차 이들이 만난 모양입니다. A씨는 그때를 기억하며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같이 오셨는데 70세는 돼 보이시더라구요. 두 분 다요. 할머니는 아프신지 않아계셨어요”라고 썼습니다. 중고 혈압측정기를 사러 나온 건 노부부였습니다. A씨는 그들에게 더욱 꼼꼼하게 제품 사용법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2만5000원을 받아 돌아서던 그 순간 왠지 모를 이상한 감정에 빠졌습니다. A씨 머릿속에 번뜩 두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돌아가신 외할어버지와 그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 말이죠.

노부부에게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모습이 스쳐 보였던 걸까요? A씨는 문자를 나눴던 노신사의 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깍, 여보세요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뭐 좀 드릴 게 있으니까 잠시만 거기 계세요!” 하고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자리에서 A씨는 물건값으로 받았던 2만5000원을 노부부에게 건넸습니다. 물론 그들은 받지 않으려 애를 썼고요. A씨는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나서 그래요. 저 공무원인데 도와드리고 싶어요. 이거 쓰고 꼭 건강해지세요”라고 말하며 한참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돌아섰다고 합니다.

거래가 끝나고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날 느꼈던 감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훈훈한 중고거래 현장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의 눈시울도 덩달아 뜨거워졌고요. 집으로 돌아간 노부부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판매자를 직접 평가하는 후기 게시판은 A씨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의 하루는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누군가는 3만원이 아닌 3만5000원에 물건을 팔았을 것이고, 2만5000원을 먼저 제안하지 않았을 겁니다. 집 앞으로 와서 받아가라고 한다거나 내가 편한 약속 장소를 잡았을 수도 있고요. 상대방의 선의를 받은 이는 돌아서자마자 모른 척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씨와 노부부는 만났고, 마음을 전했고, 선의에 고마운 인사로 응답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에 고향조차 가지 못하는 이 쓸쓸한 추석 연휴. 그래도 꿋꿋하게 뜬 보름달처럼 말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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