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갈 곳 없지만…이 아이들이 화상채팅에 접속한 이유

화상회의 앱에 접속한 10여명의 초등학생들.

29일 오후 7시. 화상회의 플랫폼에 1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접속했다. 참여자 중 가장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첫인사를 건네자 다른 아이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책상에는 저마다 풍선, CD, 병뚜껑 등이 준비돼 있었다. 보호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이날 온라인 공간에 모인 것은 학교나 학원 수업 때문이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외출이 어려워지고,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면서 나름의 ‘비대면 놀이’ 방법을 찾은 거였다.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낸 것은 학부모가 아닌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거주하는 낙생초등학교 6학년 이현승군이다. 현승군이 먼저 어머니 장모(42)씨에게 아이디어를 냈고, 장씨가 참여할 아이들을 모았다.

모임을 주도하는 이현승군.

현승군이 온라인 모임을 기획한 것은 7월 말쯤이다. 가족 모두가 미국에서 1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자가격리 시작과 동시에 모임을 가졌다. 처음은 2018년부터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오프라인으로 했던 영어모임이었다. 세 살 어린 동생 시후군 친구들에게 현승군이 영어를 가르쳤는데, 다시 하고 싶지만 대면 만남이 어려우니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현승군이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들과도 과학실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고, 장씨가 지역 인터넷 카페에 모집 글을 올리면서 모임이 시작됐다. 모임 때마다 새로운 공지를 올리기 때문에 참여 인원은 매번 달라진다. 공지를 본 학부모가 자녀에게 참여 의사를 물어본 뒤 신청을 하면 아이들이 모임 시간에 맞춰 화상 채팅방에 접속하는 식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실험 시작 전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다. 인원은 항상 다르지만 10~30명 정도다. 초등학교 3학년이 대부분이고, 2학년이나 5학년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모임은 현승군이 실험 주제를 정해 내용을 설명하면 아이들이 따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승군은 과학 실험 모임을 만든 이유에 대해 “동생들과 함께할 놀이를 생각했는데 신기한 실험을 하면 흥미 있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제와 관련해서는 “학교 수업이나 책, 인터넷 검색으로 배운 것 가운데 집에서 쉽게 재료를 준비할 수 있는 실험 위주로 고른다”고 했다. 이를테면 자석 공중부양, 풍선 프로펠러 실험 등이다.

실험을 설명하는 현승군의 모습.

모임 준비도 철저히 한다. 현승군은 “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실험 내용에 대한 ppt 자료를 만들어 모임 전 카페에 올리고, 저 혼자 미리 연습도 해본다”며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수 있게 퀴즈도 준비한다”고 말했다. 진행은 영어로 한다. 비슷한 나이의 형이 영어를 가르쳐주면 더 재밌게 놀면서 학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모임을 하는 이유는 뭘까. 현승군은 최근 경험한 재능기부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서 시작된 무료 사이트인데, 60세 이상의 은퇴한 봉사자가 아동과 화상채팅으로 만나 함께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현승군은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자유롭게 다니지 못해서 불편했다”며 “이걸 해보니까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어서 저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승군은 “(모임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재미있어하고 실험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질문도 많다”며 “가끔 실험이 복잡해 지루해하면 간단한 게임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또래와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라도 함께할 수 있어 좋다며 “서로 잘하는 분야를 돌아가면서 가르쳐주는 모임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장씨는 “어른들이 나서는 게 아니라 현승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모임이 이뤄졌다”며 “아이들이 대면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비대면으로라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