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합의했다니까요!” 허술 임대차법에 세입자들 눈물

집주인·세입자 10% 인상 합의해도 ‘임대차 3법’이 우선
서울 전세물량 씨 말라 옮기지도 못할 판


서울 강서구에 거주 중인 4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아파트 전세 만료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집을 옮기지 않고 더 살고 싶은데 계약을 갱신하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7월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2년 계약 연장이 가능한 계약갱신청구권은 무용지물이 됐다. 전세가격을 올리지 못하느니 2년 실거주하고 집을 파는 게 낫겠다는 집주인의 의지가 반영됐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집주인과 협상에 나섰다. 현재 4억원인 전세가격보다 4000만원(10%) 더 올려줄테니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평형대가 6억원대까지 급등한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저렴해도 5%인 전세가액 인상 상한선보다는 높다. 집주인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응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계약이 ‘신규 계약’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5% 상한선을 넘기 때문에 기존 계약의 갱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규 계약의 경우 2년 뒤 A씨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집주인이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A씨는 내용증명을 해서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지만 주인은 머뭇거린다고 한다. A씨는 “어차피 분양을 노리고 있어서 2년만 더 살 생각인데도 주인이 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내용증명 해도 효력 없어
A씨가 주인에게 제안한 내용증명은 실효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설령 내용증명을 한다고 해도 계약 이후 A씨의 마음이 바뀌어 2년 더 살겠다고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내용증명을 떼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사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합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등) 분쟁이 생기면 민사 소송으로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입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이 오히려 세입자의 족쇄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A씨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처럼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문제다(국민일보 10월 8일자 1면 보도). 세입자가 법 시행 이전처럼 ‘합의’ 하에 편법적인 계약을 통해 보금자리를 지키려 해도 쉽지 않다. 국토부는 법적 기준을 우선하겠다면서 추가 예외 조항을 만드는 데는 부정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차 3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만든 법이어서 이런 개별 사례까지 제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옮길 전세 없다…대안 없어 '발 동동'
‘전세를 옮기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낙관적인 대안을 내놓기가 힘들다. 전세 물량이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8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임대차 3법 시행 직후인 지난 8월 서울시내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는 1만638건으로 전년 동월(1만4898건)보다 28.6% 줄었다. 지난달에는 6732건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전년 동월(1만2503건)과 비교해 아예 반토막이 났다. 이달의 경우 1~8일 사이 469건의 거래가 성립된 게 전부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지난 8월 기준 서울시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가 전년 동월 대비 3.7% 늘었다는 자체 통계를 토대로 아직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9월 자료가 나오지 않아 (물량이 없다고) 예단하기 힘들다.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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