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내전’…최악 시나리오, 현실이 될 수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백인 우월주의자 최대 위협 꼽아
흑인 시위도 위험 요소…대선 이후 총격전까지 우려
미국인 19% “정치적 폭력, 정당화될 수 있다”
미국인 56% “대선 이후 폭력 증가할 것”

미국 미시간주의 주도인 랜싱에 있는 주(州) 정부 청사 앞에서 지난 4월 14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시위대들이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가 밀어붙였던 상점들의 영업 중단 등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휘트머 주지사 납치 음모를 꾸몄던 백인 우월주의자 6명이 지난 7일 체포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AP뉴시스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지지자와 바이든 지지자가 무력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인들의 이 같은 두려움을 전하며 “전쟁처럼 될 것이다(It’s going to be like war)”라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트럼프·바이든 지지자들 모두 자신이 미는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불복해 총격전 등 국내 테러를 벌이고, 이에 상대방 진영도 반격에 나서면서 미국이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물리적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대선 이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특히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극우단체와 연계돼 내전을 모의한 혐의로 남성 13명을 체포했다고 지난 7일 밝히면서 공포는 극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퇴원한 뒤 백악관에 도착해 마스크를 벗고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AP뉴시스

이들 중 최소 6명은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납치 음모를 꾸몄다. 여성인 휘트머 주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처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영업 정지 등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극우주의자들의 타깃이 된 인물이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백인 우월주의 극단주의자들을 미국 내 테러 세력 중 미국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테러 세력으로 꼽았다.

미 국토안보부는 지난 6일 발표한 ‘2020년 미국 위협 평가’ 보고서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위협’ 항목에서 이같이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국토안보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국내 테러세력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은 위험한 시그널이다. 그래서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의 몸통”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렸던 첫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백인 우월주의 폭력조직인 ‘프라우드 보이즈’를 향해 “물러서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by)”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7월 14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가진 대선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미국에선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일부 흑인 시위는 약탈과 방화로 악화됐다. 흑인들의 폭력적인 시위도 대혼란을 촉발시킬 수 있는 변수다.

“폭력, 정당화될 수 있다”…미국 응답자 19% 찬성

미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면서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무뎌지는 것은 화약고 옆의 기름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지난달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폭력 시위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결코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응답자의 12%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7%는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의 응답자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폭력 시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반면, 응답자의 70%는 “폭력 시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 성인 5명 중 1명이 “폭력 시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밝힌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폭력을 용인하는 인식은 폭력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도화선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가고 있다.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대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폭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는 문항에 응답자의 55.8%는 “그럴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10.8%에 불과했다. “알 수 없다”는 대답이 33.4%를 차지했다.

극우·극좌 둘 다 문제…그러나 극우가 더 위험

뉴욕타임스(NYT)는 “5월 이후 50명 이상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향해 차량으로 돌진했다”고 9일 보도했다.

NYT는 “정치적 폭력에서 극우·극좌는 모두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NYT는 “극우·극좌를 동등하게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NYT는 “오늘날 미국에서 극우세력이 극좌세력보다 더 큰 폭력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지난해 미국에서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살인사건이 42건 발생했는데, 이 중 38건이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됐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들의 이 같은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극우·극좌의 폭력성에 대한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2%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18%는 “안티파(극좌파 조직)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밝혔다. 백인 우월주의자와 ‘안티파’ 모두 위협이라고 답한 비율은 27%로 나타났다.

극우·극좌에 대한 미국인들의 걱정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짐 잭슨은 LA타임스에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기를 거부할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백악관에 계속 머물 수 있게 하기 위해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잭슨은 이어 “민병대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무장 봉기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것이 내가 예상하는 최악의 악몽이다”라고 토로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인 지니 데이비스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당선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스는 이어 “바이든이 만약 패배할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은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며 “시민들 사이에 전쟁처럼 될 것이다”이라고 주장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 백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5월 30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차량에 불을 지르는 방화 시위를 벌였다. AP뉴시스

응답자 50.7% “미국인들, 다음 대통령 정당성 인정 안할 것”

미국 대선을 불안하게 만든 주범은 코로나19다. 투표소 감염을 우려해 확대 실시되는 우편투표가 올해 미국 대선의 화약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는 부정선거, 사기 투표”라고 주장하면서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한지 오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모든 신호는 정치적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총격전 등 극단적인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올해 대선을 둘러싼 후유증은 오래 갈 전망이다.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대선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치러질 것으로 생각하는가’는 질문에 의견이 거의 절반씩 갈렸다. “그럴 것”이라는 답한 응답자는 52.7%였고,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47.3%로 조사됐다.

‘미국 국민들은 대선 결과에 따라 다음 대통령의 정당성을 인정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는 문항에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럴 것이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49.3%였다. 그러나 과반을 미세하게 넘는 50.7%는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트럼프나 바이든 중 누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엄청난 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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